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Dec 09. 2023

괜찮다가도 가끔씩

23.04.11(화)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 처치홈스쿨을 하러 갔다. 원래 월요일과 수요일인데 이번 주는 화요일과 수요일에 한다고 했다. 나도 아침에 잠깐 교회에서 일을 했고, 아내와 아이들이 오는 걸 봤다. 따로 인사를 하지는 못했다. 교회에서 나올 때 잠깐 인사를 할까 싶었는데, 열심히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라 방해가 될 것 같았다.


퇴근이 그렇게 늦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일정을 마치고 자연드림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내가 먼저 집에 도착해서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가방을 던져 놓고 소파에 널브러져서 휴대폰을 보는 기분이 꽤 좋았다. 가끔 내가 먼저 퇴근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겨도 요즘은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꽤 달콤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금방 왔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자녀들은 다른 날과 비슷하게 반갑게 인사를 받아줬고, 아내는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당연히 나에게 화가 나거나 그런 건 아니었을 테고 하루의 피로와 감정 소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을 거다.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조금의 웃음기도 없었다. 소윤이에게 ‘혹시 엄마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지만, 딱히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다. 하루 전체를 놓고 보면야 입이 아프겠지만, 들어오기 직전에는 없었다는 뜻이었다.


아내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내 상황 자체에 대해 짜증이 났다. 집에 와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거북했다. 짜증이라기보다는 무기력에 가까웠다. 의욕을 잃었다. 아내의 고충과 힘듦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고 충분히 이해도 됐다. 그러니까 아내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닌가, 정말 깊숙이 들어가면 아내에게 화가 난 건가. 아무튼 내가 느끼기에는 아내에게 안 좋은 감정은 없었다. 아마 어제 시윤이와 통화를 한 것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겼다. 아내는 자기가 할 테니 나에게는 운동을 다녀오라고 했다. 그것도 공허하게 들렸다. 아내는 피곤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마치 다른 날의 나처럼. 아이들은 샤워를 시켰다. 자녀들에게는 어두운 기운을 직접 발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떻게 안 느꼈을까 싶다. 당연히 느꼈겠지.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 바로 운동을 하러 갔다. 운동을 하면 마음이 좀 다스려질까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러지는 않았다. 아내는 내가 운동을 하는 동안 계속 소파에서 졸았던 것 같았다. 아내 스스로 ‘사경을 헤맸다’고 표현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아내는 그제야 조금 기운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도 치우고 간식도 먹고.


난 아내에게 다정하게 굴지 못했다. 마치 아내에게 뭔가 화가 난 사람처럼.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아내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자기가 뭘 잘못한 게 있냐고 물어봤다. ‘그런 거 아니라고, 그냥 조금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대답했다. 계속되는 남편의 차가움(사실 난 차가운 게 아니라 그냥 말을 안 한 것 뿐이었는데, 대체로 아내는 나의 이런 모습을 차갑다고 느낀다. 그만큼 집에서는 까불거리니까)에 아내도 답답했는지 더 이상의 대화 시도를 포기했다.


아내는 먼저 자러 들어갔고 난 잠깐이나마 깊은 밤의 고요를 즐기다 잤다.

매거진의 이전글 꾹꾹 참다가 결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