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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9. 2023

아닌 밤 중에 갑자기 토 파티

23.04.12(수)

아침에 아내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내가 왜 그랬는지 솔직한 심경도 밝히고 아내에게 바라는 것도 얘기했다. 난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아내와 아이들도 예배를 드리러 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매듭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내는 매우 답답했을 테니까. 아내에게 따로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러기 어려운 아침이었을 거다.


아내와 아이들은 예배가 시작되고 나서 왔다.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고, 그만한 이유라는 건 대체로 비슷하다. 굳이 따로 묻지는 않았다. 예배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아내가 나의 얼굴을 보며 다소 ‘작위적인 웃음’을 보여줬다. 내가 아침에 메시지를 보내면서 아내에게 요청한 게 바로 그거였다.


“조금 더 많이 웃어줬으면 좋겠어”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괜히 얘기했나’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다. 나도 잘 못 하는 거니까. 나의 갑갑함을 아내에게 전이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고. 아무튼 아내는 무언의 웃음으로 나의 메시지에 답장을 했다.


처치홈스쿨 식구들과 함께 점심을 함께 먹었다. 우리 가족은 아내가 집에서 싸 온 카레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큰 자녀들만 데리고 커피를 사러 갔다. 아빠 선생님은 나와 K만 있었다. 시윤이와 K의 첫째와 둘째, 다른 가정의 첫째 두 명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소윤이는 안 가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이제 꽤 분명하게 덥고 힘든 걸 싫어한다. 꽤 강력한 동기가 아닌, 오늘처럼 그저 커피를 사러 가는 겸 산책하는 건 이제 거부할 때도 많다. 언제 어디서든 누나가 무엇을 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윤이가 어떻게 결정할 지 궁금했는데 의외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아이들 다섯 명을 데리고 다녀오려니 꽤 시간을 썼다. 아이들과 함께여도 차분한 걸음으로 걷는 산책이라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아이들은 마치 산책을 나온 강아지처럼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동네를 걸을 때는 생각보다 안전한 곳이 없다. 쉬지 않고 ‘그만’, ‘더 가면 안 돼’, ‘멈춰서 기다려’를 얘기해야 한다. 어린 자녀들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함께 커피를 사러 갔던 자녀들을 커피와 함께 다시 엄마들에게 인계하고 나와 K는 2층으로 올라와서 오후 업무를 시작했다.


장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집으로 가기 전에 도착하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난 저녁에 처치홈스쿨 아빠선생님들 모임이 있어서 귀가가 늦었다.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은 마트에 들러서 이것저것 사고 꽤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종종 가는, 갈비탕과 육전, 소고기 전골을 파는 식당에 갔다고 했다. 오늘은 소고기 전골은 안 먹고 갈비탕과 육전을 먹었다고 했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시윤이가 집에 다 도착해서 토를 했다고 했다. 시윤이에게 물어보니 마트에서부터 멀미가 나는 것처럼 속이 안 좋았다고 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트에 있을 때, 빨리 나가고 싶다고 징징거린 모양이었다. 진짜 속이 안 좋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저녁 먹은 게 얹혔거나 차를 타고 오면서 멀미를 했거나(그러기에는 너무 짧은 거리이긴 했지만), 진짜 애초부터 속이 안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여보. 근데 시윤이가 저녁 먹을 때도 계속 배가 부르다고 하면서 별로 안 먹었어요”


이례적이긴 했다. 보통 시윤이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잘 안 한다. 오히려 적게 먹고도 배가 부르다고 얘기하는 게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마찬가지로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장모님이 오셨으니 취침 시간도 늦어졌다. 아이들은 꽤 늦은 시간에 누웠다. 방에서 이따금씩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소윤이는 약간 짜증을 내기도 했다. 몸을 이리저리 배배 꼬면서. 시윤이도 조금씩 그랬다. ‘오늘 좀 힘들었나’ 정도로 생각하면서 아내와 장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소윤이의 잠꼬대 같은 짜증이 선명해졌고 먼저 방에 들어간 아내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여보. 여보”


소윤이가 토를 했다. 엄청 많이. 저녁에 먹은 건 물론이고 하루 종일 먹은 걸 다 게워 낸 듯했다. 아내가 2층 침대에 올라가 소윤이와 소윤이의 자리를 수습했다. 많은 이불과 베개에 토사물이 묻지는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소윤이는 토를 하고 나서는 멀쩡했다. 특별히 힘들어 보이거나 아파 보이지 않았다. 소윤이 스스로도 토를 하고 나니 속이 편해졌다고 했다. 너무 피곤한 상황에서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은 게 소화가 안 되서 그런가 싶었다. 시윤이와 소윤이가 모두 토를 했다는 게 꺼림직했지만 그저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시적인 소동인 줄 알았던 소윤이와 시윤이의 토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하도 많이 토해서 몇 번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소윤이는 몇 번을 더 토했다. 나중에는 음식물이 안 나오고 가래와 위액만 나왔다. 시윤이도 또 토했다. 시윤이도 더 이상 음식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장모님은 주무시러 방에 들어가고 난 뒤였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윤이가 멀쩡한 것도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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