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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09. 2023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

23.04.13(목)

서윤이는 멀쩡하지 않았다. 서윤이도 토를 했다. 소윤이, 시윤이와 똑같은 양상이었다. 서윤이도 나중에는 위액만 나왔다. 아내는 밤새 보초를 섰다. 비닐봉지를 들고. 토가 묻은 이불을 빨래하고 처리하느니 차라리 보초를 서며 충실하게 비닐봉지를 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다. 아내가 보초의 담당자였지만, 나도 잠을 설치기는 했다. 그야말로 아닌 밤 중에 생난리였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전혀 잔 것 같지 않은, 개운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느낌이었다.


일단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세 명 모두 같은 병을 앓는 것 같았다. 그나마 설사가 없고, 열이 많이 나지 않고, 엄청 처지지 않는 게 감사했다. 저번에 갔던 소아과는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아는 곳은 없었고. 검색평이 좋은 어느 내과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여전히 같은 증상을 호소했다.


“배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고”


소윤이는 더 이상 토하지는 않았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병원에 가서도 두어 번 더 토했다.


식중독인지 장염인지 정확히 판단을 하려면 균 검사를 정밀하게 해야 하는데 그건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일단 위와 장을 보호하는 약을 처방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제 저녁에 혹은 그 전에 먹은 게 뭔가 잘못 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처치홈스쿨의 다른 엄마 선생님과 다른 자녀도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선생님 한 명은 아이들처럼 밤새 토하고 난리였다고 했다. 처치홈스쿨 안에서 뭔가 바이러스가 돈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그만하길 다행이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다시 집으로 왔다. 장모님은 그때까지도 상황을 모르고 계셨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시기도 했고 일어나셔서도 기도를 하느라 우리가 다시 집에 돌아갔을 때도 여전히 방에 계셨다. 오늘은 장인어른도 오시기로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계실 때 이 난리가 벌어졌다.


장모님도 일어나시고 하셨으니 난 출근을 했다. 교회로 갔는데 K가 없었다. 오전에 내가 늦는다는 얘기를 듣고 K도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다른 일정이 있다고 했다. 카페로 옮길까 하다가 집에 가서 일을 하기로 했다. 일이 잘 될지는 의문이었지만, 아픈 아이들을 간호해야 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집에 가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모님이 계시기는 했지만 장모님도 몸이 썩 좋지 않으셨다.


집으로 가는 길에 빵과 커피를 샀다.


“빵과 커피 사 달라고 하면 너무한가? 애들 먹고 싶으려나?”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아내도 먹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보호자는 잘 먹어야 한다. 소윤이는 아예 먹고 싶은 욕구가 없었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소윤이만큼은 아니었다. 배고픔을 느꼈지만, 조심스럽게 물과 미음만 먹였다. 약을 먹어서 그런지 더 이상 토하지도 않았고 상태도 많이 좋아지기는 했다. 오히려 소윤이가 가장 힘들어 했다. 마치 아플 때처럼 힘도 없고 식욕도 없었다. 열도 조금 났다.


어른들은 점심을 배달을 시켜서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나를 뺀 모두가 낮잠을 잤다. 아이들은 아내와 함께 안방에서. 장모님은 작은방의 시윤이 침대에서. 난 아이들 공부방에서 일을 했는데 엄청 졸았다. 차라리 낮잠을 조금 자는 게 효율이 훨씬 좋았을 뻔했다.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은 꽤 오래 잤다. 거의 두 시간을. 어젯밤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매우 평화롭게 잤다. 지난 밤의 난리로 끝이 나는 거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계속 소윤이만 처졌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마치 다 나은 것처럼, 평소처럼 까불거리기도 했고, 짜증도 냈고, 다투기도 했다. 진짜 아프면 그럴 기운도 없다. 소윤이처럼. 소윤이는 먹고 싶은 것도 없다고 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배고픔을 호소하며 밥을 먹겠다고 하는 것과 대조됐다. 밤 사이 너무 많이 토하기만 하고 먹은 게 없어서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운이 엄청 없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태생적으로 배고픔을 잘 견디는 것 같다. 시윤이하고는 다르다.


“여보. 여보가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네. 평화롭네”


공부방에만 있었는데, 아내는 그래도 다르다고 했다. 장모님이 계시면 아내의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해 주시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바른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할머니로 인해 풀어지는(?) 게 더 많았다. 아내에게 나는, 아이들의 질서와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


저녁에는 장인어른도 오셨다. 서윤이는 오후 내내


“할아버지는 언제 오실까? 이제 거의 다 오셨을 거 같은데?”


라고 하면서 할아버지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그걸 찍어서 장인어른께 보내드렸으면 아마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감쪽같이 잊으셨을 거다.


저녁에는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조금씩 밥을 먹었다. 계란찜과 시금치가 반찬이었는데 다들 많이 먹지는 않았다. 모두 남겼다. 소윤이는 여전히 식욕이 없었지만, 몸을 생각해 먹었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배가 고프다고 했지만 정작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래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다들 좋아지고 있었다. 하룻밤의 난리와 고생으로 끝나는 게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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