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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0. 2023

아빠는 라면을 좋아해

23.04.16(주일)

아이들은 완전히 멀쩡했지만 전염성이 있는 장염일지도 모르니 점심은 집에서 먹기로 했다. 내가 속한 남선교회의 월례 회의가 예배 후에 있었다. 난 거기 참석했고, 예배 중간에 잠든 서윤이는 예배당 뒤편에서 여전히 자고 있었다. 아내는 자는 서윤이 옆에 앉아 있었고. 20여 분의 회의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왔다. 감사하게도 점심 때 나온 국과 반찬을 싸 주셨다.


아이들은 국에 밥을 말아서, 아내와 나는 교회에서 주신 반찬에 김과 참치, 김치를 더 꺼내서 먹었다. 너무 어색했다. 주일 그 시간에 집에 있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교회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을 영 아쉬워 했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를 했고 이해도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점심을 다 먹고 나니 엄청 졸렸다. 아마 평소에도 졸렸겠지만 교회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춰졌거나 참았을 거다. 그러다 예배시간에 졸음이 폭발했을 때도 많았고. 아무튼 집에 있으니 도저히 참기 어려운 수준의 졸음이 몰아쳤다. 아내는 서윤이가 이미 낮잠을 잔 걸 무척 아쉬워 했다.


“얘들아. 우리 오늘 다 함께 낮잠이나 한 숨 잘까?”

“아, 네?”


받아들일 리가 없는 제안이었다. 농담 삼아서, 다음 제안을 위한 포석을 깔기 위해서 던진 제안이었다.


“그럼 엄마랑 아빠는 들어가서 조금만 잘게. 너희는 너네끼리 좀 놀고 있어”


물론 그것도 흔쾌한 마음으로 동의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제안과 동의의 절차를 따로 밟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적극적으로 막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난 먼저 안방 침대에 누웠고 아내는 자잘한 집안일을 조금 더 하고 눕겠다고 했다. 순식간에 잠들었다. 중간에 간헐적으로 잠에서 깨기는 했지만 제법 깊이, 푹 잤다. 아내는 없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유추해 보니 아내는 소파에 누워서 자는 듯했다. 어쩌면 그 덕분에 내가 조금 더 푹 잤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갔는데 아내는 여전히 비몽사몽이었다. 아내는 단순히 졸린 게 아니라 몸이 조금 안 좋다고 했다. 약간의 몸살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미열도 있었다. 두통도 있었고. 감기나 몸살이라는 게 원래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긴 하지만 오늘은 유독 뜬금없이 느껴졌다.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더 자도록 했다.


원래 어떤 목적으로든 밖에 나갔다 오려고 했다. 예배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오기도 했고, 와서도 자느라 시간을 보냈으니 보답성(?) 외출을 생각했다. 날이 좋았으면 산책을 나갔을 텐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디 실내를 가야 했는데 그럴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우리 백화점 갈까?”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냥 실내에서 돌아다닐 만한 곳 중에 최근에 안 가 본 곳을 떠올린 거다. 아내의 숙면을 위해서도 자리를 피해주는 게 낫겠다 싶었고. 아주 잠깐 우비를 입히고 장화를 신겨서 산책을 하는 방법도 고민하긴 했지만, 선뜻 실천으로 옮기기 부담스러운 상상이었다.


백화점에 도착해서 바로 지하 1층으로 갔다. 마트와 여러 식당이 있는 곳이었다. 저녁에 파스타를 만들어서 먹을 생각이어서 파스타 면을 샀다. 오늘의 유일한 목적을 1분 만에 달성했다. 그 뒤로는 유유자적 식품관을 구경했다. 유유자적이라고 표현하니 오랜 시간을 머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었다. 구경은 금방 끝났다.


“소윤아, 시윤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니면 앤티엔스 먹을래?”

“어, 아이스크림이여”


의견이 똑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원하는 맛을 하나씩 고르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골랐다. 소윤이는 이걸 고를 때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시간에 쫓겨서 급히 골랐다. 푸드코트 식탁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숟가락을 하나씩 줬고, 서윤이는 내가 먹여줬다. 다들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먹기 위해 앉았으니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먹기만 했다. 나름 양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집에 오는 길에 자연드림에도 들렀다. 파스타를 먹으면서 탄산수에 오미자청을 타서 주고 싶었는데 집에 탄산수가 없었다. 탄산수를 사러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에게 먹고 싶은 간식을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셋 모두 기다란 막대 캬라멜(?)을 골랐다. 그게 뭐라고 고르라고 하니까 ‘아싸’를 외치면서 뛰어갔다. 생모짜렐라 치즈가 보이길래 그것도 샀다. 지난 번에 한살림에서 아내에게 사 줬는데, 아내가 너무 행복해 하면서 먹었다. 생모짜렐라 치즈를 보니 아내가 생각났다. 한살림에서 샀던 것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이름도 ‘생모짜렐라’가 아니었다. 그래도 모양은 비슷했다. 생모짜렐라에 비하면 풍미가 떨어질지는 몰라도 맛이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빠. 이제 바로 집으로 가는 거에여?”


요즘은 서윤이도 이 말을 자주 한다. 바로 집으로 왔다. 아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에 뒤척이긴 했지만 잠에서 완전히 깨지는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안 좋은가 싶어서 걱정이 됐다. 난 일단 열심히 파스타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안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아내가 혼자 있을 때는 성립하지 않는 ‘불가침 영역’이, 내가 있을 때는 한시적으로 가능해진다.


“얘들아. 엄마 좀 깨워줘. 출동”


공부방에서 놀던 세 녀석이 일제히 안방으로 달려갔다.


파스타 면 한 봉지를 거의 다 했는데 그릇 네 개에 나눠 담으니 이미 바닥이었다.


“난 라면 먹어야겠다”


이런 상황에 조금도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라면도 엄청 맛있게 먹었다. 아내는 나를 무척 안타까워 했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들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엄청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기운이 없는 건 좀 나아졌지만 두통은 여전하다고 했다. 활기차게 이것저것 할 기운은 없었다. 아이들 씻기고 눕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외 각종 집안일까지 모두 내가 도맡았다. 아내도 아이들이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자러 들어갔다.


“여보. 오늘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요”


이 말을 안 들었어도 전혀 상관이 없었을 텐데, 막상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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