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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0. 2023

첫째의 마음

23.04.17(월)

아내는 기운은 좀 차렸지만 아직 두통이 심하다고 했다. 소윤이가 고군분투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누워있는 엄마에게 동생들이 방해꾼이 되지 않도록, 자기가 어떻게든 달래고 놀아주려고 애를 쓴다고 했다. 동생들의 터무니 없는 요구에도 참아주고, 설득하고.


“알았어. 알았어. 누나가 해 줄게. 그러니까 엄마한테 가지 마”


배우자가 있으면 배우자가 고생이고, 배우자가 없으면 첫째가 고생인 건가. 아내는 소윤이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럽다고 했다.


“여보. 저녁은 사 먹을까? 집에서 뭐 해 먹을 거 있으면 내가 해도 되고”

“냉동실에 뭐 좀 있긴 할 텐데. 그냥 사 먹어요”

“나 해도 돼. 뭘 할 지 알려만 주면 돼. 안 사 먹어도 돼. 나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면”

“그냥 사 먹고 싶네”


아내는 바깥 음식을 사서 집에서 먹을지, 밖에 나가서 먹을지 고민했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나가서 바람도 쐬고 싶고, 그렇다고 나가기에는 몸이 무겁고. 고민하던 아내는 나가서 먹기로 결정했다.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차를 타고 20-30분 정도 가야 했는데, 그걸 감수할 만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내의 상태가 괜찮았다. 오히려 밖에 나와서 바람을 쐬니 나아진 것 같기도 했고, 남편의 퇴근으로 인한 활력 충전인 것 같기도 했고. 아무튼 어제에 비하면 훨씬 정상이었다.


저녁은 맛있게 먹었다. 파스타라 서윤이가 혼자 먹으면 난장판이 될까 봐 처음에는 먹여주다가 나중에는 혼자 먹게 했다. 서윤이는 의외로 엄청 잘 먹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시원시원하게 떠 먹었다. 시윤이는 크림 파스타를, 소윤이는 토마토 파스타를, 서윤이는 골고루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바로 집에 가는 거냐고 물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주 잠깐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서 걸을까 생각했지만 아내의 몸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다는 걸 떠올리며 참았다. 아이들의 성에는 차지 않았겠지만 밥 먹고 한살림에 갈 때 아내는 차를 가지고 가고 나와 아이들은 걸어서 갔다. 한 15분 정도 걸렸다.


그래도 아내가 어제보다는 확실히 좀 나아졌는지 집에 돌아와서도 바로 자지 않고 여가시간(?)을 즐겼다. 아이들을 씻기는 것도 아내가 맡았다. 대신 난 시윤이가 성경 필사를 할 때 필요한 성경 본문을 썼다. 아내나 내가 본문을 써 주면 시윤이가 그걸 보고 필사를 하는데, 사실 내가 써 준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나 싶다. 아내가 오늘 밤에 그걸 써 달라고 부탁하길래 아내가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썼다. 짧은 쪽지도 하나 썼다. ‘오늘은 짜증 내지 말고 잘 참아 봐’라는 내용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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