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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1. 2023

똥에 의해 움직이는 삶

23.04.19(수)

어제 처치홈스쿨을 할 때, 서윤이가 낮잠을 자면서 모기에 물렸다. 눈 주위에 물려서 눈이 약간 부었는데, 비누로 씻었더니 많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몇 시간 후에 보니 반대쪽 눈이 부어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아침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피부과에 갔다. 공지된 문을 여는 시간보다 일찍 갔는데도 사람이 많다고 했다.


“힘드네 정말. 서윤이 계속 징징거리고”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더군다나 아내는 병원 진료를 마치면 바로 교회에 와야 했다. 나도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서윤이의 눈이 부은 건 모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두드러기라고 하셨고 일단 약을 먹기로 했다.


함께 수요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었다. 어제 저녁에 먹고 남은 돈까스를 활용한 ‘돈까스 덮밥’이었다. 연속 돈까스였지만 난 맛있었다. 세 끼 내내 돈까스를 먹어도 지겹지 않은 사람이라서. 서윤이가 엄청 잘 먹었다.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나와서 그랬는지 배가 고팠나 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내와 아이들은 오후 일정을 소화했고, 난 2층에서 일을 했다. 잠시 화장실에 갔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예요?”

“나? 화장실인데? 왜?”

“잠깐 와 줄 수 있어요?”

“어? 왜?”

“아니 시윤이가 힘을 쓰면서 버티네”

“어, 알았어”


시윤이와 아내가 교회 마당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윤이와 아내의 소리라기 보다는, 시윤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일을 마치고 나도 마당으로 나갔다. 시윤이는 아내 앞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음이라기 보다는 악다구니에 가깝긴 했다. 아내는 들여보냈다. 시윤이와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악다구니를 그치기 전까지는


“악 쓰는 걸 멈추고 원하는 걸 얘기해야 한다. 악만 써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계속 악을 쓰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넌 계속 악을 쓰는 거고 아빠는 계속 기다릴 거다”


가 주요한 메시지였다. 시윤이가 악다구니를 조금 멈추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나마’ 또박또박 얘기했을 때, 교회 본당으로 옮겨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때부터는 시윤이가 스스로 상황을 복기하고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엄마는 잘못한 게 있는지 없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핵심 메시지였다. 다행히 시윤이는 대화가 잘 되는 상태였다. 어떤 강요와 압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상황을 되짚고, 자기 잘못도 순순히 인정했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얘기를 하니 나도 괜찮았다. 사실 시윤이가 대화에 잘 응해주기도 했고. 다시 아내에게 인계를 하고 일에 복귀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퇴근할 무렵까지 교회에 있었고, 저녁에는 아내의 성경공부가 있었다. 즉, 아내는 두 시간 쯤 뒤에는 다시 교회로 와야 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투리의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아내 혼자 차를 타고 집으로 가서 준비를 한 뒤, 다시 나와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 교회에 가라고 했다. 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슬렁슬렁 걸을 생각이었다. 소윤이가 가고 싶어 하는 문구점에도 들르고. 아내는 갑작스럽고 속도감 있는 제안과 추진에 어리둥절 했지만, 본능적으로 순응했다. 아내는 내가 타고 다니는 차를 타고 먼저 집으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이 타고 다니는 차는 수리를 맡겼는데, 마침 수리가 다 됐다고 연락이 왔다. 집에 걸어서 가지 못하게 된 아이들, 특히 서윤이가 다소 슬퍼했지만 일단 정비소에 가서 차를 찾았다. 대신 문구점에는 들르기로 했다. 문구점 자체 주차장은 없어서 근처에 있는 동사무소에 주차를 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길도 한 번 건너야 해서 꽤나 번거로웠다.


문구점에 들어가서 한 10분 쯤 구경을 했을 때, 시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똥 마려워여”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니 시윤이의 말이 채 끝맺음을 하기도 전에 서윤이도 얘기했다.


“아빠. 똥 샀어여어”


거짓말을 하나도 안 보태고, 5초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떻게 해야 하지. 교회로 가야 하나’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

‘갑자기 집으로 가게 되면 소윤이가 너무 서운할 텐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모름지기 먹고, 자고, 싸는 건 자기 집만큼 편한 데가 없다.


“얘들아. 가자. 집으로 가야겠다”


소윤이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아쉬움이 진하게 올라오는 게 보였지만 일단은 외면했다.


아내는 아직도 집에 있었다. 성경공부 모임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고, 원래 모임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보기로 해서 그냥 집에 있다가 가기로 했다는 거였다. 집에 도착해서 소윤이에게 얘기를 꺼냈다.


“소윤아. 많이 서운했지?”

“네”

“미안해. 아빠도 어쩔 수가 없었어”

“근데 그게 뭐 아빠가 미안할 일인가”


첫째의 속 깊음이란.


아내는 곧 나갔다. 아이들 저녁으로 궁중 떡볶이를 해 주기로 했다. 아내가 삶아 놓은 닭가슴살도 넣으려고 하다가, 아내가 장조림을 할 거라고 해서 그냥 다진 소고기로 대체하기로 했다. 대신 파프리카, 애호박, 양배추 등의 야채를 듬뿍 넣었다. 재료를 모두 손질해 놓고 넓은 팬에 하나씩 넣어 가며 볶았다. 아무 생각 없이 팬을 보다가


‘소고기도 들어가고 닭가슴살도 들어갔네. 엄청 고품질 떡볶이네’


라는 생각을 했다. 곧바로


‘어? 닭가슴살? 뭐지?’


아무 생각 없이 단계를 밟다가 나도 모르게 닭가슴살까지 넣어 버렸다. 보기에는 좋았다. 맛에도 포만감에도 보탬이 될 것 같았고. 장조림을 하려고 산 게 아니라, 일단 사 놨는데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일단 삶아 놓고 장조림을 할까 했던 거라 아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떡볶이의 맛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들 모두 호평이 가득했다. 남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남고 싹 없어졌다. 뿌듯했다.


서윤이는 똥을 많이 쌌다. 낮에 처치홈스쿨을 하면서도 많이 싸긴 했는데 너무 콩알만큼 싸서, 아내가 나에게


“여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거야”


라고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문구점에서 똥을 쌌다고 했을 때도 엄청 쥐똥만큼 쌌고, 떡볶이를 만들고 있을 때는 조금 더 많이 쌌고, 자려고 누웠다가 똥을 쌌다고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끝’인 느낌으로 쌌다. 다행히(?) 매번 친절하고 기쁘게 맞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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