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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1. 2023

내가 아프다니

23.04.20(목)

오전에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여보. 날 위해 정말 간절히 기도 좀 해 주세요”


한 줄의 문장이었지만 아내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짧은 기도를 하기는 했지만 과연 아내의 현실이 조금 나아졌을지 걱정이 됐다. 따로 연락을 하지도, 오지도 않았다.


낮에는 교회의 집사님이 집에 잠깐 오신다고 했다. 소윤이 피아노 강습(?)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오시는 거였다. 소윤이는 아주 오래오래 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일반 학원에 보내는 건 아내와 나의 뜻이 아니었다. 마땅한 선생님을 만나지도 못했고,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쓰지도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고, 다니는 교회의 집사님이 피아노를 가르치고 계셨다. 언젠가 소윤이도 집사님께 부탁을 드려볼까 생각만 하다가 최근에서야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거다. 아내의 기도 요청 메시지는, 그 집사님이 오시기로 한 시간이 거의 임박했을 때 받았다. 상황이 그려졌다. 더욱 아내가 안쓰러웠고.


난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바깥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 교회로 왔다. 아침부터 배가 자주 아파서 화장실에 여러 번 다녀왔다. 그것 말고 큰 이상은 없었는데 오후에 교회로 돌아왔을 때부터 몸이 심상치 않았다. 자기만 아는 ‘아플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나 싶다. 나도 그걸 느꼈다.


‘어? 뭐지? 불길한데?’


혹시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나빠지는 게 느껴졌다. 서둘러 정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처음보다 훨씬 확연하게, 몸이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여보. 나 몸이 안 좋네. 좀 누워야 할 거 같아”


배에 탈이 난 거 같기는 했다. 아침부터 그런 양상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갔을 때는 확신을 가져도 될 만했다. 옷을 갈아입고 바로 침대에 가서 누웠다. 몸이 조금 으슬으슬 했다. 마음을 먹고 누우니, 병균이 더 날 뛰는 건지 더 힘들어졌다.


저녁 여섯 시 무렵부터 계속 누워 있었다. 처음에 한두 시간은 좀 눈을 붙였는데 그 뒤로는 눈을 하나도 못 잤다. 자기는커녕 이리저리 뒹굴며 끙끙 앓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내가 열을 재보더니 39도라고 했다. 오랜만에 정말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막 나왔다. 혼자 침대에 누워 있으니 아내 생각이 엄청 많이 났다.


거실로 나와서 소파에 누웠다. 앉아 있으면 좀 나을까 싶어서 나왔는데 막상 앉았더니 10초도 버티기 힘들었다. 소파에 누워서 아내의 병수발을 받았다. 아내는 수건에 물을 적셔서 얼굴 곳곳에 놔 줬다. 손과 발까지 뜨겁다고 했다. 난 여전히 한기가 느껴졌고. 내일 빠지거나 미룰 수 없는 일정이 하나 있었다. 계속 그걸 생각했다.


‘아, 내일은 나아져야 하는데.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나가서 움직일 만큼은 돼야 하는데’


혼자 방에 누워 있을 때는 안타까운 소리가 많이 들렸다. 속없이 떠들고 까부는 아이들의 소리와 체력과 정신력을 모두 소진해서 더 이상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너그러이 수용할 힘이 없는 아내의 목소리였다. 지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미안했다. 아이들 수발이 끝나고 나서는 남편의 병수발을 한 셈이었다.


“여보. 미안하네. 힘들지”

“미안하긴 뭘 미안해”

“그래도 여보가 옆에 있으니까 좋긴 좋네. 애들 심정이 이해가 되네”


애들이 아프면 왜 그렇게 엄마를 찾는지 알 것 같았다. 진심으로, 혼자 방에서 너무 힘들었을 때 아내를 부를 뻔했다. 잠깐만 옆에 앉아 있다가 가라고. 아픈 와중에도 아내의 지치고 힘든 목소리에 이성을 붙잡았으니 다행이었다.


아내의 병수발 후에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차라리 잠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밤새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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