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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1. 2023

난 정상으로, 아내는 두통으로

23.04.21(금)

다행히 밤을 지내며 몸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정상은 아니었고, 정상에 더 가까워진 것도 아니었다. 겨우겨우 일을 하러 갈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밤새 잠을 설치고 그나마 겨우 잠들었다가도 아침 일찍 눈이 떠졌지만 계속 누워 있었다.


아내와 자녀들도 모두 안방에서 잤다. 어젯밤, 서윤이가 자다가 깼을 때 아직 아내와 내가 자기 전이었다(나는 ‘잠’과 ‘안 잠’의 경계가 없긴 했지만). 서윤이를 안방으로 데리고 와서 눕히고 아내도 바닥에 누웠다. 난 침대에 누웠고. 자는 사이에 어느새 소윤이와 시윤이도 와서 바닥에 누웠다. 그렇게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서 자게 됐다.


오전에는 아예 쉬었다. 쉬면 쉴수록 몸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억지로라도 더 누워 있었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점심시간 무렵에 집에서 나왔다. 밥은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일은 무사히 마쳤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해가 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일을 하러 나갈 때 보다는 몸 상태가 훨씬 좋았다. 약간의 허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대신 아내가 또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어제 나의 병간호를 비롯해서 남편 없는 독박육아를 한 덕분이었을까. 어떻게 보면 환상의 호흡인 건가. 동시에 아프지 않았으니.


원래 아내가 죽을 먹자고 했고 나도 별 생각없이 그러려고 했는데, 갑자기 먹기 싫어졌다. 원래 죽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땅히 먹을 만한 게 떠오르지도 않았다. 집 근처의 가까운 어딘가에서 먹고 싶었는데 아내도 나도 적당한 곳을 금방 생각해 내지 못했다.


집 바로 근처에 있는 국수가게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국수가 좋다고 했고, 비빔밥도 있어서 내가 먹기에도 괜찮았다. 투명한 현관문 너머로 보이는 가게 안의 풍경이 심상치 않았다. 영업을 끝내고 정리하는 듯했다.


“아, 혹시 끝났나요?”

“네, 끝났는데. 몇 분인데요?”

“저희 어른 둘에 아이 셋이요”

“뭐 먹게요?”

“저희 그냥 국수랑 비빔밥이나 이런 거요”

“들어오세요. 해 드릴게요. 근데 국수만 돼요”

“아, 그래요?”


아내는 밥이 안 된다는 소리에 잠시 망설였다.


“여보. 그냥 먹자. 나 국수 먹어도 돼.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서 어떻게 주문할 지 고민을 하는데 사장님이 말했다.


“비빔밥도 해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혹시 두 그릇도 되나요?”

“밥이 한 공기밖에 없어요”

“아, 네. 그럼 비빔밥 하나랑 국수 두 그릇 주세요”


어제 점심 이후로 첫 음식물이었다. 많이 먹지는 못했다. 속이 거북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아이들은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밥 먹고 커피도 한 잔씩 샀다. 잠깐이지만 아이들 산책도 하고, 나도 시험 삼아(?) 한 잔 마셔 보고 싶었다. 커피 생각이 막 간절하게 난 건 아니어도 ‘한 잔 마셔도 좋겠다’ 정도의 욕구가 생기기는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주 짧게, 한 5분 정도 놀기도 했다.


아내는 계속 두통을 호소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시할 만한 수준도 아니라고 했다. 난 밤이 될수록 정상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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