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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2. 2023

밀린 집안일과 함께

23.04.22(토)

#밀린 집안일과 함께

##D+2969, D+2187, D+1114 - 23.04.22(토)


새벽에 축구를 다녀왔다. 아내는 축구를 하러 가려고 빨리 낫길 바란 거 아니냐고 의심했지만, 정말 그런 건 아니었다. 마침 축구하러 가는 날에 맞춰서 몸이 좋아진 것 뿐이었다. 축구를 하고 오니 오히려 몸이 더 개운했다.


아무런 약속이나 일정이 없어서 바람이라도 쐬러 나갈까 했는데 미세먼지 수치가 최악이었다. 정말 안 좋았다. 무시하고 나갈 수준을 넘어선, 위협적인 수준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집안의 해야 할 여러 일을 하기로 했다.


우선 빨래. 거대 소 목장의 소똥처럼, 한 겨울 강원도 철원의 눈처럼, 뒤돌아 서면 쌓이는 빨래가 빨래통을 넘어 베란다 바닥까지 한가득이었다. 일단 그걸 처리하기로 했다. 아내는 아침을 먹고 생산된 설거지거리를 비롯한 주방 정리를 맡았다. 빨래는 한 번에 처리하는 게 불가능했다. 1차 세탁기 가동을 실시하고, 건조기에 있는 빨래를 꺼내왔다. 거실에 쏟아 놓고 개기 시작했다. 꽤 한참 걸렸다. 당연하다. 옷이 많으니까. 애들 옷이라 부피가 작으니까 얼마 안 돼 보여도 막상 개다 보면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나온다.


“여보. 여보가 애들 빨래를 분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개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주인에 맞게 옷을 분류하는 게 꽤 까다롭다. 몇몇 헷갈리는 옷들이 있다. ‘분류의 산’을 넘으면 ‘위치의 산’을 만나게 된다. 분류한 옷을 각각의 위치에 맞게 옷장에 넣어야 하는데 이건 아내에게 부탁했다.


아직 1차 빨래가 완료되기 전이었다. 청소기를 돌렸다. 침대 바닥이나 소파 바닥까지 돌릴까 하다가 그냥 드러난 바닥만 꼼꼼하게 청소했다. 이불도 털었다. 그러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제대로 점심을 차려 먹을 필요는 없었고, 장모님이 사 주신 수박을 잘라서 먹었다. 소윤이는 아내와 공부 시간을 가지느라 방에 들어가 있었다. 일단 시윤이와 서윤이만 먼저 먹였다. 둘 다 어찌나 잘 먹는지 꽤 많은 양을 금방 먹어치웠다.


소윤이도 공부를 마치고 나왔다. 소윤이도 함께 수박을 먹었다. 서윤이는 낮잠을 잘 시간이었다. 내가 데리고 들어가서 재웠다. 잠깐 눕고 싶어서 자처하긴 했지만 잘 생각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졸았다. 다행히 아주 금방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소윤이는 나에게도 함께 하자고 했지만 정중히 사양하고 잠시 쉬겠다고 했다. 소파에 누워서 잠시 쉬었다.


“아빠. 피곤해여?”

“아, 그런 건 아닌데 잠깐 쉬려고”


1차로 가동한 세탁이 완료됐다. 세탁기에 있던 옷들을 건조기로 옮기고, 2차 빨랫감으로 세탁기를 채웠다. 세 번 돌리는 건 너무 싫어서 다소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건조기와 세탁기를 동시에 가동했다. 빨래방 직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마치고 나서야 좀 씻어야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전에 화장실 청소도 할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화장실 청소까지 하면 너무 지칠 것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가 사다 놓은 팝콘을 먹었다. 처음에는 아내가 배분을 해 줬고, 다 먹고 나서는 나에게 더 먹어도 되냐고 물어왔다. 더 먹으라고 했더니 나에게 (그릇에) 부어 달라고 했다. 알아서 부어 먹으라고 했더니, 그러면 너무 많이 먹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서윤이 것도 남기고 적당히 먹으면 된다고 하고, 직접 부어서 먹도록 했다.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는 힘을 길러주겠다는 거창한 의도는 없었다. 난 소파에 누워 있었고,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게 조금 귀찮았을 뿐이었다.


오늘의 마지막 할 일은 세차였다. 이곳에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세차를 하지 않았다. 집 바로 근처에 세차장이 있는데도 그랬다. 오늘은 마음을 먹고 다 함께 세차장으로 갔다. 원래는 차 두 대를 모두 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여러 집안일을 하고 나니 아내도 나도 두 대는 버겁게 느껴졌다.


“여보. 그냥 한 대만 하지 뭐. 내 차는 그냥 주유할 때 세차 돌리면 되지”

“그러자”


바람이 엄청 세차게 불었다. 겉을 닦을 때는 아내와 아이들은 안에 있고, 내가 혼자 내렸다. 고압수를 뿌리고, 거품을 묻혀서 닦고, 다시 고압수를 뿌리고. 묵은 때가 많은 만큼 한참 걸렸다. ‘겉’보다 심각한 게 ‘안’이었다. 꼼꼼한 아내에게 내부 청소의 주도권을 맡겼다. 난 외부의 물기를 닦았다. 아이들은 한 편에 서서 자기들끼리 놀았다. 원래 상상했던 그림은 다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세차를 하는 거였는데, 역시나 상상대로 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너무 까불었다. 그냥 두기에는 차가 많은 곳이었으니 위험요소도 그만큼 많았고. 여러 번 말해도 잊고 또 위험하게 까부는 자녀들에게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아내가 청소기 돌리는 걸 마치고 걸레질을 할 때는 아이들도 함께 들어가서 닦았다.


아내는 엄청 개운해 했다.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면서. 그만큼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원래 계획은 세차를 마치고 나면 집에 가서 삼계탕을 끓여 먹는 거였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 아내는 삼계탕을 끓이는 데만 한 시간 이상이라고 했다.


“여보. 그럼 오늘도 밖에서 먹을까?”

“그럴까? 뭐 먹지?”


자주 가는 저렴한 중국음식점에 가려고 했는데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분식 같은 걸 사 먹으려고 시장으로 가다가, 가는 길에 보이는 한식뷔페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일 하면서 점심 먹으러 갔던 적이 있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한 끼 때우기 좋은 곳이었다. 아이들과 가기에도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았던 기억이 있었다. 소윤이도 성인과 같은 요금을 받는 탓에 가격이 엄청 저렴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내가 갔을 때와 맛이 달랐다. 간이 너무 셌다. 그래도 몇몇 반찬은 괜찮았다. 조금 아쉽기는 했어도 한 끼 때우기에는 적당했다. 시윤이는 버섯볶음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각종 나물 반찬을 잔뜩 떠서 다 먹었다. 난 나물은 손도 안 댔는데. 시윤이의 나보다 나은 식습관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


커피를 한 잔 사서 돌아오니 거의 아홉 시였다.


“여보. 그래도 뿌듯하다. 밀린 집안일을 많이 해서”

“맞아. 너무 개운하네”


어딘가에 가서 마음껏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다소 심심한 토요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잠들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아내와 나도 자려고 누웠는데 자던 소윤이가 깨서 안방으로 왔다. 무서운 꿈을 꿨다고 하면서. 자기가 직접 얘기는 안 했지만 아내와 나의 사이에서 자고 싶은 마음을 안고 왔을 거다. 무서운 꿈을 꿨다고 하니 당연히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시윤이도 깨서 와 있었다.


“시윤아. 누나는 무서운 꿈을 꿨대. 안방에서 자야 할 거 같아. 시윤이는 방으로 돌아가”


순순히 돌아갈 리 만무했다. 시윤이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시윤아. 그럼 누나는 여기서 엄마랑 자라고 하고 시윤이는 아빠랑 작은방에 가서 자자”


시윤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 표정 그대로 서 있었다. 자기가 권리 주장을 할 수 없고 그저 아내나 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안방 입성’을 가지고 그러고 있는 게 약간 짜증이 났다. 오히려 소윤이는 자기가 안방에서 아빠와 자도 된다고 했다. 소윤이는 어디서 누구와 자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엄마나 아빠 한 명이라도 함께 자고 싶은 거였다.


“그럼 그냥 둘 다 니네 방으로 가서 자”


소윤이와 시윤이는 터덜터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소윤이만 불쌍해졌다.


“여보. 여보가 작은방에 가서 시윤이랑 잘래?”

“그래. 소윤이 이리로 오라고 할게”


아내가 작은방으로 갔고, 소윤이가 내 옆에 와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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