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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2. 2023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게 이상한 일상

23.04.24(월)

괜찮냐는 나의 물음에 ‘아직 괜찮다’고 대답했던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와. 배 아파서 잠깐 화장실에 왔는데 소윤이 울고 난리났네”

“왜?”

“이유는 모름. 나 참. 휴”


수십 여 분 후에는 ‘시윤이가 또 시작’이라고 했다. 그러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시윤이의 울음소리도 들렸는데 다른 날처럼 짜증을 내느라 그런 게 아니었다.


“여보. 시윤이가 팔이 아프대요”

“팔이? 왜?”

“아, 뭐 놀다가 넘어졌는데 손목을 삐끗했나 봐요”

“그래? 손목을 돌아가?”

“네. 근데 아프긴 한 거 같아요”

“엎드려 뻗쳐 자세 해 보라고 해 봐”

“하긴 해요”

“그럼 일단은 괜찮은 거 같네. 여보가 잘 지켜 봐봐. 많이 붓거나 그러지 않는지”


난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아내와 아이들도 교회로 온다고 했다. 처치홈스쿨을 하는 날이 아닌데도 오는 이유는 ‘학습과 고구마’였다. 최근에 새로운 단계(굳이 비교하자면 초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의 학습을 시작한 소윤이와 공부도 하고, 고구마도 굽기 위해서라고 했다. 집에서 하든 교회에서 하든 두 동생의 방해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지만, 교회는 아무래도 훨씬 넓으니까 집보다는 낫나 보다.


나와 K가 점심을 먹으러 나간 사이에 아내와 아이들은 교회에 와 있었다. 시윤이는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딱 봐도 통증이 심해 보였다. 일단 손을 뒤로 젖히는 동작을 못했다. 아직 손이 부은 건 아니었고.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았다. 정황을 들어 보니 거실에서 뛰며 놀다가 넘어지면서 손을 짚은 듯했다. 지난 해에 내가 손목을 다쳤을 때와 비슷해 보였다. 막연한 느낌과 손목의 가동 범위를 고려해 봤을 때, 크게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걱정은 됐다.


아내는 나에게 3층에서 서윤이를 재우고 1층으로 옮길 때 도와달라고 했다. 1층에서 재우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다고 했다(마침 K의 아내와 자녀들도 교회에 와서 함께 놀고 있었다). 서윤이와 함께 3층으로 올라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이제 와 주세요”


서윤이는 이불에 누워 곤히 자고 있었다. 바로 안을까 하다가 아내와 함께 이불 채로 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각각 두 귀퉁이씩 잡고 이불을 들었는데 우리의 상상과는 다르게 서윤이게 데굴 구르면서 두 눈을 부릅 떴다. 바로 다시 내려놨다. 서윤이는 바로 눈을 감으며 손을 빨기는 했지만 왠지 잠에서 깬 것처럼 보였다. 일단 1층까지는 내가 안아서 옮겼고, 난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다시 잠 안 드네. 계속. 흑”


십 분 정도 뒤에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원래 서윤이를 재우고 소윤이와의 공부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계획이 다소 틀어졌다고 했다.


또 얼마 후에는 아내가 시윤이와 함께 2층으로 올라왔다. 난 안쪽에 있었고 아내와 시윤이는 바깥쪽에 앉아서 서로 보이지는 않았다. 난 소리만 들렸다. 아내는 내가 거기 있는 걸 알았을 거고, 시윤이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알았을 것 같기는 한데,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시윤이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시윤이가 소윤이에게 뭔가 기분이 상해서 팔을 잡아챈 모양이었다. 의외로 시윤이는 아내의 말을 순순히 듣고, 울지도 않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내가 있는 걸 알았나. 아내도 일부러 2층으로 올라온 건가.


퇴근도 함께 했다. 다 끝났다고 해서 1층으로 내려갔더니, 시윤이는 아내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울고 있었다. 짜증 농도가 짙은, 매우 듣기 힘든 울음이었다. 난 그냥 지켜봤다. 아내가 시윤이와 얘기해서 잘 풀었다(이걸 풀었다고 하는 게 맞나).


사모님께서 지난 주일에 먹었던 반찬을 오늘 싸 주셨다고 했다. 덕분에 저녁을 수월하게 해결했다. 아내는 한 번씩 자기도 모르게 힘든 한숨을 내쉬다가도 멈추고는


“아니야.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라면서 쓴웃음을 짓곤 했다.


아내는 밤늦은 시간까지 영어 공부를 했다. 소윤이를 가르치려면 아내가 먼저 공부를 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도 있고 산수도 있지만, 교재가 모두 영어로 된 거라 거의 영어 공부에 가까웠다. 정말 성실하게 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 바람을 가졌다.


‘부디 아이들이 아내의 저런 모습을 닮았으면 좋겠다. 나의 이 꾀를 닮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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