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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2. 2023

별 게 다 미안한 육아퇴근 이후의 감정

23.04.25(화)

오늘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은 아내가 아예 울고 있었다. 시윤이와의 상황이 다른 날에 비해 훨씬 심각해 보였다. 난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내도 시윤이도 평정심을 잃은 듯했다. 일을 멈추고 집으로 향했다. 비가 꽤 많이 내렸다.


시윤이와 한참 시간을 보냈다. 나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집에 가면서도 계속 마음을 다스렸고, 시윤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잘’인지 ‘잘못’인지 나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시윤이와의 시간을 마치고 시윤이를 먼저 내보냈다. 머리와 마음을 비우기 위해 아주 잠깐 휴대폰을 들여다 봤다.


아내와 아이들도 처치홈스쿨을 하는 날이라 교회에 가야 했다. 내가 시윤이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모두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난 교회로 가지 않고 다른 카페로 갔다. 어차피 오후에는 일정이 있었는데 그냥 애초에 일찍 가기로 했다. 소윤이, 시윤이와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하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며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아내와 서윤이는 덜 된 준비를 마저 하는 중이었다.


아내가 걱정이었다. 사실 어찌 보면 아내와의 시간을 더 많이 가졌어야 할 지도 모른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그저 안아주기만 하더라도. 점심시간 즈음에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잘 갔어요? 시윤이는 괜찮고?”


아내는 답이 없었다. 처치홈스쿨 하는 날에는 휴대폰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쁘고 정신이 없기는 하다. 한참 뒤에, 서윤이 낮잠 재울 때쯤 연락이 됐다. 다행히 아까처럼 심각한 상황이 또 나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뭐, 그럭저럭”


이라고 했으니, 다른 날에도 빈번하게 마주했던 정도였던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삼계탕을 만들고 있었다.


“여보. 저녁에 나갔다 와”

“갑자기?”

“응. 저녁 준비 안 하고 있었으면 바로 나가라고 하려고 했는데 그건 안 되겠네. 애들한테는 내가 말 할게”


아내는 매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는 삼계탕을 먹지 않고, 준비만 해 주고 나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이제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현관에서도 인사를 하고, 베란다까지 가서도 인사를 하는 걸 보면 아쉽긴 한가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삼계탕을 다 먹고 나서 아이들은 스스로 씻었다. 난 아이들을 기다리며 거실 바닥에 누워있다가 매우 심하게 졸았다. '심하게’라고 표현한 이유는 집이 떠나가라 코를 골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는 사이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 씻고 로션도 바르고 잘 준비를 모두 마쳤다.


“아빠. 똥 쌌어여”


서윤이는 똥을 쌌다. 눌어붙음의 정도로 유추해 볼 때, 꽤 오래된 듯했다. 나중에 아내가 돌아와서 얘기하기를


“여보. 애들 샤워했어요?”

“아니? 왜?”

“근데 왜 소윤이 팬티가 나와 있지? 엉덩이 닦았나?”

“내가 닦아주지는 않았는데. 아, 그럼 혼자 닦았나 보다”

“그러게. 팬티만 갈아입었을 리는 없잖아”

“그런가 보네. 혼자 닦았나 보네. 좀 미안하네”

“왜?”

“난 거실에서 엄청 졸았거든. 그 사이에 혼자 알아서 다 했나 보다”


괜히 안쓰럽고 미안했다. 아내와 나 모두 애들 방에서 자기로 했다. 난 소윤이가 자는 2층에서. 아내는 시윤이가 자는 1층에서.


설마. 무너지지는 않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나에게 현실로 닥칠 리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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