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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3. 2023

마지막 남은 자의 생일

23.04.27(목)

시윤이가 일어나자마자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시윤아. 잘 잤어?”

“아니여”

“왜?”

“아니, 아빠가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가지고”

“아, 그랬어?”

“그리고 제가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아빠가 가운데 누워 있어서 제가 누울 데가 없어서”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서윤이 옆에 앉아 있다가 아빠가 옆으로 움직였을 때 누웠어여”


아마도 아내는 새벽기도에 다녀온 뒤에 더 자지 않은 듯했다. 모든 가족이 시윤이의 생일을 축하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난 출근하면서 시윤이를 따로 불러서 얘기했다.


“시윤아. 생일 축하해. 생일이니까 짜증 내지 않기 위해서 더 노력해 보고. 알았지?”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교회에 왔다. 나도 교회에서 일을 했고. 소윤이가 오늘부터 피아노를 배우는데 교회 집사님에게, 교회에서 배우기로 했다. 이른 시간에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아내의 모습에서 부지런함과 분주함이 느껴졌다.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가 모든 걸 말해줬다. 소윤이는 바로 3층으로 올라갔고 시윤이와 서윤이는 1층으로 들어갔다. 시윤이는 3층으로 따라 올라가려고 하던 걸 내가 멈춰세웠다. 시윤이의 반응이 왠지 어색했는데, 알고 보니 집에서도 이것 때문에 한 차례 난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르는 척하고 따라 올라가려고 하다가 제지 당했던 것 같다.


첫 피아노 수업을 마친 소윤이의 소감이 어떤지 궁금했다. 소윤이는 재밌었다고 했다. 기다림이 길고 간절했던 만큼 만족스러웠나 보다. 처음 배우면 꽤 지루하고 힘든 기초과정을 견뎌내야 한다는 걸 미리 얘기해 놓기는 했다. 부디 소윤이가 잘 견디고 배워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은 뒤에 가진 나의 작은 꿈인 ‘가족 밴드’의 일원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시윤이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드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오늘도 점심을 함께 먹었다. K의 아내와 자녀들도 있었다. 자녀들은 우동을 끓여줬고 어른들은 분식을 사서 먹었다. 이번 주에는 아내와 아이들도 월요일부터 내내 교회에 왔다. 그래도 아이들은 ‘지겹다’라거나 ‘그만 가자’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도 가자’, ‘내일도 가자’, ‘집에 가지 말자’라는 말을 하면 했지.


나와 K는 오후에 마저 일을 했고, 아내와 K의 아내는 교회에 있다가 장을 보러 갔다. 자녀들은 일과를 마치고 나서 키즈카페에 가자고 했다. 일반적인 키즈카페는 아니었고 다른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아이들도 좋아하고 너무 산만하지 않아서 어른들에게도 좋다. 자녀들은 ‘시윤이의 생일’을 무기 삼아서 아빠들을 설득했다. 결국 아빠들이 넘어갔다.


아내와 K의 아내는 우리 집으로 갔고, 나와 K가 자녀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놀랍게도 소윤이와 K의 첫째는 올해가 마지막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안내 문구가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동생들이 소윤이와 K의 첫째가 없어도 올 지 의문이었고, 소윤이와 K의 첫째가 내년에도 즐거워 할 지 의문이었다. 일단 오늘은 엄청 잘 놀았다. 내가 보기에는 굉장히 유치한 수준일 것 같았는데, 잘 놀았다. 사실 공간이나 기구는 굉장히 단조롭다. 교회 3층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이 노니까 재밌는 것 같았다.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었다. 아내와 K의 아내는 집에서 열심히 저녁을 준비했다. 시윤이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인 버섯볶음, 아내와 나의 제안 중에 시윤이가 고른 찜닭, 생일이니 응당 끓여야 하는 미역국이 오늘의 음식이었다. 키즈카페에서 나와서 집으로 갔을 때, 음식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시윤이의 생일축하 장식도 아직 미완성이었다. 아내에게 장식을 맡기고, 음식은 내가 전담했다. 아내가 웬만한 준비와 진행은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숟가락만 얹었다. 다행스럽게도 가족이 아닌 외부인(K의 가족)에게도 대접할 만한, 도저히 먹지 못할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K의 아내가 저녁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시간이 촉박했다. 밥을 먹고 급히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K네 가족이 케이크를 사 왔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말 순식간에. 케이크를 먹을 때는 항상 비슷한 것 같기는 하다. 막내들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먹었다.


시윤이는 행복했을 거다. 좋아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하루였으니. 매년 그렇듯, 누나의 성대한 생일과 비슷한 시기의 동생의 생일을 보내며 자기 생일을 은근히 기다리는 시윤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특히나 올해는 시윤이가


“엄마. 누나 생일에 비해서 서윤이 생일은 조용했던 것 같아여”


라고 얘기도 했다. K네 가족 덕분에 시윤이의 마음에 조금의 서운함도 없이, 무사히 생일을 보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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