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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3. 2023

축구하고 와서 또 축구

23.04.29(토)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축구는 하고 왔다. 아내는 오전에 교회에 가야 했고, 난 축구를 마치자마자 바로 육아에 투입됐다. 육아와 비육아의 구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일상이라 ‘투입’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아내 없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의미다.


어제 잠을 좀 설치고 새벽같이 나가서 비를 맞으며 축구를 하고 온 탓에, 씻고 나오니 잠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잘 놀고 있었다. 슬쩍 소파에 누웠는데 순식간에 잠들었다. 깊은 잠도 아니었고, 중간에 잠깐 깨기도 했지만 꽤 오랜 시간 잤다. 어영부영 한 시간 넘게 잔 것 같았다.


“얘들아. 아빠 많이 잤네. 우리 나갈까?”


비가 그치기는 했지만 언제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하늘이었고, 예보에서도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원래는 시윤이와 축구를 하기로 했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확인하고 나서 안타깝지만 마음을 접었다. 그러다 막상 비가 오지 않으니 하러 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우비를 입혀서 놀이터에 갈까 하다가, 시윤이는 우비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얘들아. 그럼 우리 그냥 축구하러 갈까?”

“어디로여?”

“0000대로”

“좋아여”


시윤이와는 축구를 하면 되는데, 소윤이가 할 게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했지만, 비가 온 뒤라 바닥이 미끄러울 것 같았다. 소윤이는 서윤이와 비눗방울을 하면서 놀면 된다고 했다. 소윤이가 지난 번에 서윤이에게 사 준 비눗방울이 있었다. 서윤이가 그걸 가지고 놀며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뿌듯해하면서, 자기 용돈으로 사 준 거였다. 집 근처 공원에 잠깐이라도 나가서 하자고 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계속 미뤄지다가 오늘에서야 가지고 나가게 됐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안개도 많고 날도 흐려서 바깥에서 놀 만한 기분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비가 오지는 않았다. 시윤이 축구화가 작아지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잘 맞았다. 시윤이와 한참 동안 축구를 했고, 소윤이는 서윤이를 맡아줬다. 비눗방울을 불면서 시윤이의 지루함을 막아줬다.


나중에는 소윤이와 서윤이도 축구에 합류했다. 비눗방울을 어느 정도 소진하기도 했고, 조금 지루해지기도 했을 때였다. 번갈아가면서 슛을 하고 난 막았다. 소윤이도 나름대로 즐겁게 임했다. 물론 시윤이처럼 흥미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다시 축구에서 이탈했고, 시윤이는 여전히 공을 차며 놀았다.


“아빠. 너무 심심해여”


소윤이에게 미안했다. 시윤이와의 축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소윤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소윤이는 줄넘기도 꺼내서 하고 그랬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하면 재미가 없다. 옆에서 응원도 해 주고 즉석에서 규칙도 만들어서 게임도 하고 그래야 재미가 있지. 시윤이는 야구도 했다. 길게 하지는 않았고, 잠깐 하다 말았다. 야구보다는 축구를 훨씬 좋아한다.


시윤이도 할 만큼 했는지 ‘이제 그만하고 싶다’라고 말하자마자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서관에도 가기로 했다. 서윤이를 재우고 갈까 하다가 생각해 보니 점심을 먹어야 했다. 점심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아내도 끝났을 것 같아서 연락을 해 봤다. 막연하게 ‘애들은 계속 내가 데리고 있어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한 번 아내 생각이 나니 뭔가에 홀린 듯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아, 나도 이제 막 끝났어요. 여보는 어디예요?”

“우리는 00000야”

“어? 비 안 와?”

“어, 안 왔어. 지금 막 오고. 여보 점심은 먹었지?”

“어, 난 선생님들 하고 먹었어요. 여보랑 애들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러게. 고민이네. 여보는 이제 다 끝났어?”

“네. 끝났어요. 그럼 여보도 일단 교회로 와요”

“알았어”


교회로 가면서 ‘혹시 아내들끼리 시간을 더 보내려고 했는데 방해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따로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게 아니었냐고 물어봤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소윤이는 막상 교회에 가니 교회에 더 있고 싶었는지 계속 교회에 머물자고 했다. 아마도 K의 자녀들도 곧 온다는 걸 알아서 그러는 것 같았다. 소윤이는 꽤 집요하게 교회에 있으면 안 되냐고 물어봤지만, 아내는 교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듯했다. 대충 보면, 교회에 가고 싶은 자녀를 만류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일단 시장에 가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다. 시장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일할 때 갔었던 국밥집으로 갔다. 아내는 점심을 이미 먹어서 식수 인원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래서 국밥집으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잘 먹었다. 물론 내가 가장 잘 먹었다.


“여보. 국밥이 맛있는 편은 아니야. 그냥 그래”

“그래? 근데 여보는 엄청 맛있는 것처럼 먹네?”

“알잖아. 나. 근데 진짜 그냥 그래”


서윤이는 엄청 졸려 보였다. 밥도 겨우겨우 먹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잠들었고 덕분에 도서관에서 매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책을 골라서 가지고 오면 내가 아주 간단하게 검토를 했다. 읽을 만한 책이면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건넸는데, 사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고른 책 중에 검토를 통과하지 못한 책은 없었다. 잘 골라온 건지 나의 검토가 대충대충이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소윤이와 시윤이는 꽤 오랫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오늘도 깜짝 놀랐다. 읽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아직 정독의 속도가 빠른 건지 아니면 정독 대신 속독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빨라서 놀랐다. 서윤이도 중간에 깨기는 했는데 크게 방해가 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깬 것보다는 안 깬 게 훨씬 수월한 ‘느낌’이기는 했다.


몇 권의 책은 빌려서 집에 왔다. 아이들 저녁은 간단하게 먹였다. 밥에 김을 싸서 먹였다. 심지어 밥도 즉석밥이었다. 점심이 워낙 늦어서 배가 많이 고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간단하게 먹였는데 의외로 잘 먹었다. 아내와 나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일단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말이 ‘생각해 보자’였지, 그간의 숱한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아이들을 눕히고 나오자마자’ 누군가 ‘출출하다’라고 얘기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역시나 그 예감, 아니 누적된 경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네”


누가 먼저 얘기했는지 따지는 건 무의미했다. 둘 다 마찬가지였으니까. 짜장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아직 아이들이 잠들기 전이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궁금해 할까 싶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언제인가 맡아본 냄새가 풍겨올 때 ‘과연 엄마와 아빠는 무엇을 먹는 걸까’라며 엄청 궁금해 할 것 같았다. 특히 소윤이가.


짜장라면은 각각 한 봉지씩, 두 봉지만 끓였다. 아내는 모르겠고, 난 당연히 위를 모두 채운 건 아니었다.


“여보. 먹고 나니 뭔가 2차가 생각나네?”


아내도 동감했다. 아내는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욕구가 폭발했다.


“여보. 00가 지금 티코 먹는대. 너무 맛있겠다. 나 너무 좋아하는데”


나도 알고 있다. 아내가 여러 번 얘기했다. 아내가 임신을 한 것도 아닌데, 먹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이것이 10년차 부부의 사랑인가.


“사다 줄까?”

“응”


아내는 0.000001초의 지체도 없이 대답했다. 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기꺼이 귀찮음을 감수했다. 집 근처 마트에 티코가 있는지는 파악이 안 된 상황이었지만, 일단 갔다. 참 공교롭게도(?) 마침 티코가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아내에게 티코를 대령했다. 아내는 군것질도 좋아하고 빵도 좋아하지만 단일 품목을 여러 개 먹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오늘은 아니었다. 아내는 앉은 자리에서 티코 세 봉지를 깠다(세 봉지라고 해도 매우 작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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