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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7. 2023

이 정도면 충분히 놀았지?

23.04.30(주일)

대예배를 드리고 나서 장로님을 뽑는 투표가 있었다. 점심이 따로 준비되지 않았고, 빵과 우유가 제공됐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빵 하나에 우유 하나였다. 밥에 길들여진 자녀들도 부족했을 거고, 누구보다 내가 가장 배고팠다. 빵을 먹었는데 먹은 것 같지 않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구만 리처럼 멀게 느껴졌다.


덕분에 오후 일정은 아무것도 없었다. 투표를 마치고 나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오늘도 그냥 집에 들어갈 생각을 못하게 만들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만약 처치홈스쿨 식구들이 함께 어딘가를 가자는 얘기를 안 하면 우리 가족끼리라도 어디든 가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처치홈스쿨 식구들과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을 확신했다. 모든 조건이 그랬다. 날씨, 한가로움, 이른 시간 등.


자녀들은 진작부터 흥이 올랐다. 바로 집에 가지 않는 것도, 계속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도 모두 흥이 오르는 요소였다.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몇 번 갔던, 짚라인이 있고 사람이 많지 않아서 한적한 놀이터에 갔다. 어른들은 근처에 있는 아주 저렴하지만 맛은 그럭저럭 괜찮은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샀다.


자녀들은 도착하자마자 짚라인을 타느라 열심히 뛰어다녔다. 계속 탔다. 한동안은 다른 건 안 하고 짚라인만 탔다. 모두.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며 제법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한 쪽에 작은 돗자리까지 펴니 마치 봄 소풍을 나온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 그랬다.


서윤이는 자기도 짚라인을 타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 아직 여기저기 어설픈 데가 많았다.


“아빠. 저도 인라인 타고 싶어여”

“인라인 아닌데?”

“어, 저도 임라인 타고 싶어여. 임.라.인”

“임라인?”

“아니이, 아빠아”


서윤이는 혼자 앉는 것도 어려웠다. 아니 아직 능력 밖의 일이었다. 서윤이가 탈 때마다 내가 가서 잡아줘야 했다. 그래도 쉬지 않고 타겠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계속 서윤이의 보조 역할을 했을 거다. 서윤이 덕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좋은 날씨를 느낄 만한 시간이 많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아니,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수 있어서 좋았던 건가.


다들 빵과 우유로는 부족했는지 저녁을 일찍 먹게 됐다. 놀이터 근처에 있는 식당에 주문을 하고 찾아서, 놀이터에서 먹었다. 밥까지 밖에서 먹으니 정말 소풍 같았다. 자녀들도 배가 많이 고플 것 같아서 많은 양을 시켜줬는데, 거의 남김없이 다 먹었다. 자녀들은 다 먹자마자 곧바로 뛰쳐나가서 놀았다.


아내들은 중간에 잠깐 백화점에 다녀왔다. 누군가 살 게 있었는데 가는 김에 나머지 엄마들도 함께 가는 거였다. 나머지 엄마들은 특별히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매우 제한적으로나마 자유부인들끼리의 시간을 가지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자녀들은 여전히 잘 놀고 있었기 때문에 남은 남편들이 특별히 더 힘들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내들은 마음의 부담이 있었는지, 생각보다 엄청 이른 시간에 돌아왔다. 남편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복귀였다.


해가 질 무렵까지 꽉꽉 채워서 놀고 돌아왔다. 떠나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놀아보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더 놀자고 얘기하는 자녀는 없었다. 그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많이 놀았나 보다. 집에 오니 당연히 매우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샤워를 건너뛸 수가 없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아내가 아이들을 씻기려고 하길래 내가 하겠다고 했다.


“여보. 놔 둬. 내가 할게”

“아니야. 좀 쉬어. 내가 할게”

“나 괜찮아. 별로 안 힘들어. 내가 할게. 싫으면 말고”

“나야 좋긴 하지”


아이들은 씻는 것도 엄마가 씻겨주는 걸 더 좋아한다. 엄마가 씻겨줘야 훨씬 개운하다고 하면서. 아내는 무척 꼼꼼하게 구석구석 씻겨주는 데 비해서 난 완전히 속도전이다. ‘얼른 씻기고 퇴근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자’ 라는 마음으로 후다다다닥 해치운다. 그래도 오늘은 그간 아이들이 얘기한 요청사항을 잘 반영해서 씻겼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의 손길과는 차이가 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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