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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7. 2023

끝을 모르는 아이들과 끝이 보고 싶은 부모들

23.05.01(월)

근로자의 날이었지만 오전에는 일을 했다. 근무와 휴무를 알아서 결정하는 형태의 노동자라 쉬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가능했는데, 오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대신 아내들이 자녀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맞춰서 교회로 온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는 놀러 가기로 했다.


점심은 김밥이라고 했다. 처치홈스쿨이 없는 날에도 점심을 고민하게 된 아내에게, 어젯밤에 ‘내일은 그냥 김밥 같은 거 사 먹자. 굳이 고민하지 말고’라고 얘기했었다. 그렇게 하자던 아내는 갑자기 김밥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했다. 제대로 된 정식 김밥은 아니었고 재료 몇 가지만 넣은 약식 김밥이랄까. 소윤이가 엄청 좋아하는 김밥이다. 아내는 별로 힘들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 만들어 먹기로 결정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내려가 보니 라면도 있었다. 김밥과 라면은 어떤 산해진미를 갖다 대도 이기기 힘든 환상의 조합이다. 소윤이는 은근슬쩍 라면 한 입을 달라고 얘기했지만, 주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몇 번 더 시도했고, 결과는 똑같았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도 갈 곳을 바로 정하지 못했다. 일단 공공기관에 서류를 내러 가야 했다. 다 함께 가서 그 근처의 어딘가를 가기로 했다. 서류만 내면 되는 거라 엄청 금방 끝났다. 공공기관으로 가는 사이에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다른 가정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 있는 놀이터에 놀러 갔는데 사람도 없고 좋으니 함께 놀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오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계획이 수정되어 갈 곳은 어디인지를 말해 주지 않았다. 마냥 신이 났던 것 같다. 어디에 가는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어디를 가든 일단 이른 낮부터 함께 놀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듯했다.


모래놀이터였다. 오랜만에 아이들의 욕구를 해소하는 시간이었다. 마음껏 모래를 만지고 놀았다. 시윤이는 K의 첫째와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계속 모래놀이를 했다. 소윤이는 함께 하다가 중간에 지겨워졌는지 어린 동생들과 함께 놀았다. 서윤이는 혼자 앉아서 한참 모래놀이를 하다가 아내가 가지고 온 포도를 본 뒤로는 아내 옆을 떠나지 않고 포도를 먹는 데 집중했다. 이렇게 자주 보는 게 신기했다.


저녁도 함께 먹었다. 보리밥을 파는 곳이었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이 주문한 보리밥 정식의 밑반찬에 고등어를 추가로 시켜서 먹였다. 너무 열심히 놀아서 배가 고팠는지 초반의 숟가락질 기세가 무서웠다. 아빠들이 자녀들과 함께 앉아서 반찬도 나눠주고 생선살도 발라줬는데 감히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젓가락으로 우아하게 발라 줄 상황이 아니어서 기꺼이 나의 왼손을 생선비린내에 내어주기까지 하면서 열심히 살을 발랐다. 똥냄새 못지 않게 불쾌한 게 생선비린내다. 다 발라주고 나니 남는 건 생선대가리였다. 기름에 풍덩 담가서 튀겼는지 머리도 맛있었다. 얘들아, 아빠 생선 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녀들은 오늘도 끝이 없었다.


“삼촌. 밥 먹고 우리 000 카페 가자여. 아니면 00해수욕장 산책이라도 하자여”


아홉 시가 거의 다 됐을 때였다. 그건 어렵다고 했더니 식당 앞에 있는 정원에 나가서 술래잡기를 했다. 의대를 목표로 하는 수험생이 공부하는 것처럼, 촘촘하고 쉴 틈이 없었다.


얘들아. 헤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이별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던가. 엄마와 아빠는 집에 가면 퇴근을 위한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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