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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7. 2023

마음 쪼그라들지 말고 살아

23.05.02(화)

개인적으로 아내에게 일이 좀 있어서 하루 종일 아내가 걱정이 되고 신경이 쓰였다. 하필 오늘따라 밀도 있게 바빠서 ‘전화 한 번 해야지’ 생각만 하고 퇴근할 때까지 제대로 연락도 못했다.


“마음 쪼그라들지 말고 살아”


가 내가 아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결국 못했지만. 일을 모두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을 때, 아내의 목소리는 엄청 밝고 활기찼다.


“여보. 잘 살았어? 오늘 목소리가 밝네? 연기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다행이었다. 사실 아내가 나보다 성품도 좋고 훨씬 큰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다만 아내는 워낙 여리지만 끝까지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난 마음에 안 들면 굳이 노력하지 않고 자르거나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아내가 오늘 하루 종일 신경 쓰면서 여러 생각을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아내의 방식이 훨씬 더 낫고 옳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아내의 노력을 지지를 하면서도 걱정은 됐다. 내가 걱정한 것만큼 우울하게 지내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은 내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서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한살림에 가야 했는데 겸사겸사 바람도 쐬고 나도 데리러 오는 거라고 했다. 반가웠다. 사실 항상 그렇다. 아내와 자녀들이 마중을 나온다는 건 왠지 모르게 기쁘고 설레는 일이다. 저녁은 밖에서 먹었다. 아내가 찾은, 한살림 근처에 있는 국수가게였는데, 난 돈까스를 먹었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엄청 맛있었다. 아이들은 꼬마김밥을 시켜줬는데, 서윤이는 김밥보다 돈까스를 더 잘 먹었다.


다이소에도 들렀다. 소윤이가 살 게 있다고 했다. 각종 수공예에 흥미가 크고, 솜씨도 좋은 소윤이는 항상 뭔가 사부작사부작 만든다. 거기 필요한 재료를 산다고 했다. 자기 용돈으로 결제가 가능해진 뒤로는 왠지 모르게 조금 더 당당하게(?) 쇼핑을 하는 느낌이다. 엄마와 아빠가 사 줄 때도 고민이 길고 깊었지만, 자기 용돈을 쓸 때는 더 길고 깊어진다. 오늘은 아내가 사 줬다. 어른들에게는 하찮은 돈이지만, 소윤이에게는 꽤 큰 돈인 1,000원 짜리를.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오늘도 꽤 늦었다. 하긴 밖에 나가서 저녁을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눕고 나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아침에 해 주고 싶었던 그 말을 풀어서 길게 편지로 옮겼다. 왠지 내일도 그럴까 봐 걱정이 돼서. 주방 후드에, 아내가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이 절대 없을 잘 보이는 곳에 걸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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