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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8. 2023

펄펄 끓는 여행

23.05.04(목)

2박 3일 동안 처치홈스쿨 전체(전국) 캠프가 열린다. 장소가 천안이라 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당연히(?) 목표한 시간 보다는 늦게 출발했지만 그래도 엄청 많이 늦지는 않았다. 30분 정도 지체됐다. 이곳에서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가정들과 중간에 휴게소에서 만나고 목적지 근처에서 점심도 함께 먹을 예정이었다.


첫 번째 만남의 장소였던 휴게소 근처에 다 왔을 때 갑자기 차에서 경고등이 울렸다. 최근에 계속 문제를 일으켰던 냉각수 쪽에서 또 문제가 생겼다. 휴게소까지 2km 정도 남았을 때라 차를 매우 천천히 움직여서 겨우겨우 휴게소에 들어갔다. 보닛을 열어보니 냉각수가 내 속처럼 팔팔 끓고 있었다.


‘열을 식혀줘야 할 네가 그렇게 끓고 있으면 어떡하니’


잠시 그대로 두다가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더니 끓던 냉각수가 화산 용암이 분출되듯 사방팔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다급하지도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해탈의 심정이었다.


‘그래. 마음껏 뿜어내 봐라’


보닛을 그대로 열어두고 처치홈스쿨 식구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천천히라도 목적지까지 가야 할 지, 근처에 있는 카센터로 가야 할 지.


잠시 동안의 휴식 아닌 휴식을 마치고 차에 돌아가 보니 냉각수는 거의 바닥이었다. 그대로 주행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근처에 있는 카센터를 찾아갔다. 당장 정밀하게 검사를 해서 문제를 찾는 건 어려우니 임시적인 조치만 하기로 했다. 그것도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그 사이 점심을 먹었다.


식당이 있을까 싶은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식당이 많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마치 여행인 것처럼 신이 났다. 아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괜찮았다. 하루 이틀 겪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가 초연했다. 아내의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소머리국밥, 돼지국밥을 지나 백반집을 만났고, 거기로 들어갔다. 엄청 친절한 곳이었지만, 맛있는 곳은 아니었다.


카페도 있었다. 심지어 엄청 젊은이스럽고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였다. 그런 카페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어서 놀랐다.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동네를 걸어보고 싶었다. 차 수리가 다 됐다는 연락을 받았고 서둘러 출발했다. 다행히 그 뒤로는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 처치홈스쿨을 하는 가정들이 모인 거라 사람이 꽤 많았다. 부모들도 많았고 자녀들은 더 많았다. 자녀들은 서로 금방 친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자녀들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자녀들과도 금방 어울렸다. 첫 날,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정은 벼룩시장이었다. 각자 준비한 여러 물건(중고물품, 제작물품 등)을 사고 파는 장이었다. 소윤이처럼 소소하게 용돈을 받는 어린 자녀들에게는 몇 백 원, 몇 천 원 짜리 물건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게 꽤 쏠쏠한 재미였다. 또 다른 사람들이 준비해 온 ‘아주 저렴한’ 물건을 구경하고 사는 것도 재미였고. 소윤이는 야심차게 준비했다. 직접 팔찌를 만들기도 했고 남는 연필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아내는 옷과 신발을 가지고 갔다. 시윤이는 별로 가지고 갈 게 없다고 했다. 연필을 몇 자루 챙겼다. 소윤이가 준비한 물건은 꽤 잘 팔렸고 아내가 준비한 옷과 신발은 판매가 부진했다. 소윤이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온 물건을 구경하며 원하는 걸 사기도 했는데, 시윤이는 선뜻 구매하지 못했다. 아직 돈을 제대로 써 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특별 용돈까지 줬는데 고민만 하고 사지 못했다. 심지어 구경도 제대로 못했다.


그 이후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조금 쉬다가 저녁 먹고 예배 드리고 자는 게 끝이었다. 별 게 없는 일정이었는데 엄청 피곤했다. 일단 어제 엄청 늦게 잤다. 아니, 어제 잔 게 아니라 오늘 잤다. 짐 싸고 준비한다고 무척 늦게까지 못 잤다. 오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났고. 오는 길에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을 만나서 몸과 마음이 적잖이 고생했고. 별 게 없는 일정이긴 했지만 마지막 순서인 예배를 마치고 나니 이미 열 시였다. 땀에 찌든 아이들을 안 씻겨서 재우는 건 너무 비인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까지 하고 나니 열 한 시였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서 나도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너무 상쾌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가 하루를 보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 샤워하고 나왔을 때, 지금처럼 엄청 상쾌하고 시원할 때야. 아빠도 이렇게 좋은데 너네도 안 씻고 자면 얼마나 찝찝했을까. 그치?”


역지사지의 정신을 바르게 발동하긴 했지만, 덕분에 엄청 피곤했다. 아이들도 피곤했는지 모두 누운 지 얼마 안 돼서 잠들었다. 싱글 침대 두 개가 있는 2인실이라 아내와 내가 따로 있을 공간은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각각 침대 하나씩을 쓰도록 했다. 서윤이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혔다. 아내와 나도 바닥에서 잘 생각이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나니 당 섭취 욕구와 허기가 몰려왔다. 딱히 먹을 건 없었다. 아내가 장거리 이동에 대비해, 아이들에게 주려고 한살림에서 산 과자가 몇 개 있었다.


매우 탐욕스럽게 그 과자를 뜯어서 먹어치웠다.


“괜찮아.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뭐”


여행이었다면 영화라도 보고 그랬겠지만, 당장 내일 아침에도 이른 시간부터 움직여야 했다. 아내와 나도 일찌감치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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