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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18. 2023

뜨겁고 코 고는 아빠

23.05.05(금)

이틀 치 아침을 어제 미리 받았다. 빵과 요거트, 우유, 구운 계란, 주스였다. 오늘과 내일 아침에 먹어야 했다. 혹시나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잘 못 먹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그랬는지 생각보다는 못 먹었다. 아내와 나도 마찬가지였고.


8시 30분부터 첫 일정이 시작이었다. 미리 신청한 강의나 모임에 참석해야 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같은 강의였다. 원래 신청했던 건 다른 거였지만 사람이 많아서 무작위 배정을 거쳤고, 신청하지 않은 곳에 참여하게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실망했지만 오래,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받아들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다소 지루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잘 들었다.


원래 오늘 오후에는 자녀들이 다 함께 축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것도 잘 관리된 천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시윤이를 비롯해서 수많은 자녀들이 기다린 시간이었다. 이것 때문에 캠프에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물론 대부분의 자녀에게는 참석과 불참석을 결정할 선택 권한이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바람에 계획대로 진행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일단 내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니 내일 일정과 바꾸기로 했다. 그 덕분에 오늘은 하루 종일 선택 모임에 들어가야 했다.


두 번째 선택 모임 시간에는 소윤이와 시윤이, 나와 아내가 함께 움직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실내에서 진행하는 ‘미니 운동회’였다. 둘 다 만족했다. 엄청 재밌었다고 했다. 처음에 갈 때는 긴가민가 하더니 다시 만났을 때는 얼굴에 화색이 가득했고, 땀 범벅이었다. 그만큼 열심히 뛰었다는 얘기였다. 서윤이는 내내 우리와 함께 다녔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계속 선택 모임이었다. 소윤이는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무언가 만드는 활동’이었고, 시윤이는 ‘종이로 미니카 접기’였다. 이번에도 둘 다 매우 만족했다. 소윤이는 완전히 취향을 저격하는 만들기 활동이었고, 시윤이도 꽤 재밌었다고 했다. 누나와 떨어져서 혼자 가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시윤이도 많이 컸다는 게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고 요즘도 누나가 하는 건 뭐든 따라서 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건 새로운 모습이었다.


마지막 모임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따로따로였다. 소윤이는 ‘책 읽기와 그리기’, 시윤이는 ‘체스’. 시윤이는 체스의 규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본인은 괜찮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규칙을 안다고 했다. 마지막 모임도 둘 다 만족했다. 시윤이는 자기가 둔 건 한 판이고, 나머지 시간은 구경을 했는데 구경도 재밌다고 했다. K의 첫째가 함께 있어서 더 재밌게 했던 것 같다.


선택 모임 네 개를 소화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비는 그치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루 만에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아예 초면은 아니어도 몇 번 본 적 없는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예배 드릴 때도 함께 앉을 정도로 친해졌다. 인간관계를 맺는 건 나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예배까지 마치고 나니 무거운 피로가 내려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주요한 관심사가 하나 더 있었다. 이사 오기 전에 함께 처치홈스쿨을 했던 가정의 방에서 함께 자느냐 마느냐였다. 사실 이미 정하긴 했다. 불시의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아이들에게는 확언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거기는 여섯 명, 우리는 다섯 명이라 방을 어떻게 나눠야 할 지 고민이었다. 일단 6인실 방에 다 함께 모였다가 엄마들과 각 집의 막내들은 우리 가족의 방으로 옮기고, 아빠들과 나머지 자녀가 그대로 6인실에서 자기로 했다.


지난 1월에 만나고 처음이니까, 한 4개월 만이었다. 자녀들은 반가워서 그야말로 난리였다. 시윤이와 나이가 같은 그쪽 집의 둘째는 작은 방을 거칠게 뛰어다녔다. 소윤이는 마찬가지로 나이가 같은 그쪽 집의 첫째와 붙어서 얌전히 이야기를 나눴다. 다들 신이 나고 흥분한 건 마찬가지였다. 과도한 흥분은 언제나 부작용을 낳는다. 각자의 동생이나 누나에게 불친절하고 무례하게 말하기도 했고, 아빠들의 부드러운 제지와 권면이 전혀 먹히지 않기도 했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었고 다들 너무 피곤해서 오래 놀지는 못했다. 자녀들은 전혀 안 피곤하다고 말하며 더 놀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모든 자녀의 얼굴에 졸림과 피곤이 가득했다. 물론 아빠들이 훨씬 피곤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리를 정리하고 일단 누웠다. 누워서 대화를 나누는 걸 허락했다. 대신 큰 소리가 아닌 소곤소곤 얘기하라고 했지만, 역시나 잘 지키지는 못했다. 큰 목소리는 고사하고 아예 일어나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얼마나 반가우면 그럴까’ 싶어서 그냥 두다가 조금 심해진다 싶으면 슬쩍 얘기하고 그랬다.


자녀들의 목소리가 하나 둘 씩 사라졌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건 소윤이였다. 홀로 남은 소윤이에게, 내 옆에 와서 자겠냐고 물었더니 바로 그러겠다고 하고는 자기 베개와 이불을 가지고 왔다. 내 옆에 착 붙었던 소윤이는 5분도 안 돼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소윤아. 왜?”

“아, 너무 더워서여”


아들에게는 코골이, 딸에게는 체온 때문에 외면 당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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