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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0. 2023

그때나 지금이나

23.05.08(월)

꿈에서 계속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물론 처음에는 꿈인지 몰랐다. 깨고 나니 꿈이라는 걸 알았다. 오랜만이었다. 꿈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는 조카의 울음소리였다. 아마도 이른 새벽부터 대차게 운 듯했다. 형님네 부부는 아침부터 낯빛이 매우 어두웠다. 밤새 씨름했을 테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출근하려고 집에서 나왔는데 날씨가 엄청 좋았다. 바람도 시원하고. 하늘과 동네의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보냈다. 답은 없었다. 한참 동안. 그러다 점심시간도 지나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연락이 왔다.


“N차 위기”


신선한 표현이었다. 1차도, 2차도 아닌 N차. 과거에도 미래에도 수없이 찾아오는 위기의 일상을 드러낸 매우 적절한 표현이었다. ‘위기의 원인’을 묻는 것도 사실은 무의미하다. 원인이라는 게 대체로 시도 때도 없이 생길 뿐더러 너무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그래도 당장 왜 그랬는지는 들었다. 내 나름대로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걸 아내에게 얘기해 줬다. 물론 현장에 있는 아내가 적용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말이 너무 안 통하네 정말”


아내의 답답함, 분노, 인내 등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쨌든 결말은 스스로 일으킨 뉘우침과 사과였다. 거기에 진심은 얼마나 담겼고, 연기는 얼마나 담겼는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부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생긴다. 틀릴 때도 많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형님네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다녀왔다. 카페도 가고 피자도 먹고 그랬는데 모두에게 낭만보다는 처절한 현실이 가득한 시간이었던 듯했다. 물론 즐겁기도 했겠지만 자연의 낭만과 위대함을 즐기기에는 육아의 현실이 너무 고달팠을 거다.


형님네 부부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사 주겠다고 했다.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보드게임을 산다고 했다. 난 먼저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시윤이, 서윤이가 나를 데리러 왔고, 소윤이는 형님네 차에 타고 먼저 마트에 갔다고 했다. 시윤이가 그 상황을 받아들였다는 게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기까지 생각보다 엄청난 서사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마트에 갔을 때는 이미 선물을 고르고 난 뒤였다. 우리보다는 보드게임에 조예가 깊은 형님네 부부의 추천에 따라 하나를 골랐고,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동의했다. 서윤이는 깍두기였다.


형님네 아들은 여전히 많이 울었다. 집에 와서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울었다. 아빠가 안아줘도 울고, 엄마가 안아줘도 울고, 밥을 먹어도 울고. 감기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계속 울었다. 어른들은 아구불고기, 아이들은 계란밥이 저녁이었다. 소윤이가 엄청 짜증스러운 표정과 함께 ‘계란밥은 먹기 싫다’는 티를 팍팍 냈다. 계란밥이 먹기 싫을 수는 있지만, 공손한 의사 표현이 아닌 밥투정으로 나오는 건 우리 집에서 금기시 되는 사항이다. 사실 공손하게 말했어도 내가 인격적으로 대응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평소에 뭐든 잘 먹고, 웬만하면 투정이 없는 소윤이가 잘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소윤아.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억지로 먹지 마. 그렇게 감사하지 않는 마음으로 먹으려면 차라리 먹지 마”


그 후의 식사 태도도 영 별로였다. 형님네 가족이 없었다면 따로 불러서 얘기를 했을 거다. 형님네 부부가 있어서, 아주 짧게 언질만 하고 넘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무척 피곤했다. 처치홈스쿨 캠프의 여독을 풀 충분한 휴식을 갖지 못하고 바로 꽤 먼 곳으로의 나들이를 다녀온 여파였다. 서윤이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서윤이는 아직 낮잠을 자기 때문에 좀 낫다. 오히려 늦은 낮잠을 잔 날은 저녁에 쌩쌩하다. 최상의 상태다. 오늘도 가장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자녀들(나의 세 자녀와 형님네 아들)을 모두 재우고 난 뒤에 어른들의 시간을 개시했다. 집에 있는 과일과 치즈, 와인으로 간단히 다과를 차리고 대화를 나눴다. 형님네 아들은 아이들 공부방에서 혼자 자고 있었는데, 한 번씩 깨서 매우 처절하게 엄마나 아빠를 부르며 문을 두드렸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였던 같은데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에서 최재성 배우가 철조망 너머에 있는 연인과 대화를 나눌 때 느껴졌던 그 애틋함과 비슷했다. 형님네 부부는 들어가지 않았다. 일종의 수면훈련이었다.


‘아, 얼마나 힘들까. 그래, 저 때가 진짜 힘들지’


만약 나에게 새로운(?) 자녀가 또 허락된다면, 그 시기를 또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한숨이 나오고 고개가 숙여졌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그때가 제일 힘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소윤이가 그만할 때, 서울 시내에 있는 아주 유명한 카페에 갔다가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나왔다. 그때 아내와 나는 결심했다.


‘이제 당분간 카페를 오면 안 되겠다’


아무튼 형님네 부부가 무척 안쓰러웠다.


사실 다른 누구를 안쓰러워 할 상황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아들과의 힘겨운 애증의 사투를 벌이는 아내를 안쓰러워 해도 모자랄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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