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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1. 2023

이러다 아내도 병 나겠네

23.05.10(수)

역시나 자녀들은 모두 병치레에 돌입했다. 소윤이가 가장 아팠다. 끙끙 앓으며 기운을 잃었다. 어제 저녁에도 피곤해서 밥도 안 먹고 누웠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소윤이는 여전히 식욕이 전혀 없었다. 힘없이 누워 있다 앉아 있다를 반복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소윤이에 비하면 정상에 가까웠지만, 기침을 엄청 많이 했다.


“여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마음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서 기도했네. 소윤이는 잠들고”


이게 바로 ‘총체적 난국’이 아니었을까. 아픈 첫째와 쉽지 않은 둘째, 그리고 똥을 ‘한마디 크기로 네 번’이나 싸는 막내까지. 여러 모로 아내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는 세 자녀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수리를 맡긴 차 한 대를 빼고 나머지 차는 내가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차가 없었다. 아내는 걸어서 병원에 갔다. 어른 혼자 걸으면 10분 정도 거리는 거리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아픈 첫째와 누나(언니)의 아픔이나 엄마의 고단함을 고려하기 어려운 둘째, 막내를 데리고 가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기운이 없어서 걷는 것조차 힘든 소윤이를, 서윤이가 아닌 소윤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갔다고 했다. 자비가 없는 서윤이는, 자기가 유모차에 타고 싶은데 왜 언니를 태웠냐고 하면서 가는 내내 징징댔다고 했다. 소윤이는 결국 수액을 맞았다. 어제 저녁부터 먹은 게 하나도 없었고, 기운도 너무 없어서 수액 맞는 걸 권하셨다고 했다. 소윤이가 수액을 맞는 동안 시윤이와 서윤이는 뭘 하고 있었을지, 아내는 무사히 그 시간을 버텨냈을지 궁금했다. 마침(?) 서윤이는 병원에서 잠이 들었다. 아파서 걸을 힘도 없는 첫째와 잠든 막내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아내의 막막함을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겨우 겨우 쉬어 가면서 옴”


서윤이는 세 자녀 중에 가장 상태가 좋았다. 병원에서도 따로 진료를 안 봤을 정도로 멀쩡했다. 집에 오고 나니 갑자기 서윤이가 열이 났다. 39도가 넘었다고 했다. 열이 많이 나는 것에 비하면 상태는 여전히 괜찮았다.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잘 먹었다고 했다. 아파도 잘 먹으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 특히 서윤이는 더 그렇다. 소윤이는 여전히 아무것도 못 먹었고, 시윤이는 잠들었다고 했다. 시윤이도 몸이 정상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 시간에 잠들다니.


내내 아무것도 못 먹은 소윤이는 ‘수박주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자녀들과 하루 종일 고생했을 아내가 무언가 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내가 퇴근하고 만들어주겠다’라고 했지만, 아내는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하면서 소윤이에게 수박주스를 만들어줬다. 시윤이도 문제였다. 소윤이에 비하면 멀쩡해 보이긴 했어도, 오늘 제대로 챙겨 먹은 끼니가 없다고 했다. 자는 녀석을 깨워서 뭐라도 먹여야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먹은 게 없었다고 했다. 마침 그때 시윤이가 깨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긴 했다. 소윤이는 수시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나도 진짜 입맛이 없다”


병수발과 육아에 지친 아내의 식욕도 덩달아 증발했다.


아내가 홀로 힘든 시간을 견딘 덕분인지, 막상 퇴근하고 만난 아이들의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소윤이도 잠시 기력을 찾은 듯했다. 무엇보다 조금씩 먹고 싶은 걸 얘기했다. 수박도 먹겠다고 했고, 빵도 먹겠다고 했고. 서윤이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이마를 짚어보면 뜨끈했지만, 말이나 행동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윤이도 기침은 많이 했지만, 기침만 빼면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평소와 가장 다른 건 아내였다. 무척 피곤해 보였다. 평소의 피곤에 서너 배의 피로가 가중된 모습이었다.


“여보. 오늘 일찍 자. 내가 다 할게”


그래 봐야 집안 정리와 설거지 정도였다. 별 거 아니긴 해도 막상 ‘해야 하는 주체’가 되면 은근한 부담이 된다. 아내처럼 전업주부들에게는 더더욱. 사실 어제도 비슷했다. 아내에게 휴식과 쉼을 주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어제도 웬만한 건 내가 감당했다. 아내는 일찍 누웠고 잠들었다. 다행히 세 녀석 모두 어젯밤보다는 훨씬 깊고 고요하게 잠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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