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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1. 2023

1시간의 행복

23.05.12(금)

오랜만에 보는 잠옷 차림이었다. 아내도, 자녀들도. 아침에 출근할 때의 모습이 아니라 퇴근했을 때의 모습을 말하는 거다. 이번 주는 다들 병치레를 하느라 어디 나가서 놀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나갔다. 병원이든 나의 배웅이든 잠깐이라도 나갔다 오기는 했는데, 오늘은 아예 집에만 있었던 거다.


“여보. 보고 싶네”


금슬 좋은 부부의, 배우자를 향한 애정표현이기도 하겠지만 최고의 육아 짝꿍인 남편 혹은 육아동반자를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했다. 내가 ‘오늘은 괜찮은가? 즐거워 보이네’라고 느끼는 날에도 언제나 힘들고 버거운 육아의 일상은 동반된다(는 걸 요즘 조금 깨닫고 있다). ‘오늘 많이 힘든가?’라고 느끼는 날에는, 진짜 죽기 직전까지 힘들다는 얘기고. 아니면 괜찮아 보이는 날에도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을 때도 많았다는 걸 역시나 요즘 조금 알게 됐고. 이러나 저러나 아내는 매일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앙의 힘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일은 많았지만 과감하게 조금 일찍 정리하고 퇴근했다. 한 시간 더 한다고 엄청난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일찍, 조금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등장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와, 아빠 오셨다”

“아빠아아아아아악”


내 옆에서 자는 서윤이 손과 발을 만질 때 만큼이나 행복한 순간이다. 그 어떤 이해관계도 얽히지 않은 사람이 보내는 ‘순수한 환영과 환대’는 정말 기분이 좋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라고 해도 거짓이 아닐 거다. 아내에게는 최고의 육아동반자이자 자녀들의 평화 유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서의 남편, 소윤이에게는 엄마의 기분과 집안의 분위기 저하에 결정적인 동생들의 억지와 떼, 도를 지나치는 짜증과 분노를 막는 아빠, 시윤이에게는 뭐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본능적으로 가장 교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성의 존재로서의 아빠. 내 나름대로 분석한 가족들이 나를 반기는 이유다. 서윤이는 잘 모르겠다. 날 왜 좋아할까. 사실 이 따위 분석은 의미가 없다. 그냥 가족이니까, 아빠니까 좋은 거지 뭐.


서윤이는 다시 열이 조금 났다. 며칠 괜찮더니 다시 또 미열이 있었다. 상태는 멀쩡해 보였다. 서윤이 뿐만아니라 소윤이와 시윤이도 여전히 기침도 많이 했고, 소윤이는 비염도 심했다. 모두 완전히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다. 서윤이는 그 와중에 열이 조금 더 난 거다.


아내는 고민을 하다가 철야예배에 안 가기로 했다. 서윤이는 열이 났으니 안 가는 건 확정이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가거나 혼자 가거나 하는 방안이 있었는데 안 가는 걸로 결정을 했다. 아내도 아프지만 않았지, 아픈 사람 이상의 피로를 느꼈고 그만큼 강력하게 휴식을 원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한 덕분에 시간이 꽤 여유로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 아직 6시 30분이예여?”


라고 하면서 체감하는 시간보다 한 시간은 이르다고 얘기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필요한 과업을 마쳤기 때문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보드게임을 했다. 형님이 와서 어린이날에 사 준 ‘쿼리도’를 했다. 꽤 많이 깔깔거렸다. 매일 이렇게 여유롭게 웃고 떠들면 참 좋을 텐데(그렇다고 평소에 늘 우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평소에도 행복하고 즐겁지만,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자녀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겠다는 말이다).


역시. 한 시간 더 일을 하지 않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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