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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3. 2023

마음을 지켰으니, 나간다

23.05.15(월)

어제 아내와 대화를 나눌 때, 아내는 자기가 조금 더 자녀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겠다고 얘기했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도 충분히 애를 쓰고 있고 잘 하고 있지만, 건강한 자기반성에서 비롯되는 다짐은 언제나 유익하니까, 아내의 다짐을 응원하고 격려했다.


“마음을 잘 지키고 있나요?”


오전에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 아직까지 잘 지키고 있어요. 근데 아직 10시 밖에 안 됐네?”


마음을 지키기 위해 매우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어떤 심정인지 공감이 됐다. 그로부터 두 시간 뒤에 아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시윤이와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아내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메시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래도 아내가 괜찮네’였다. 굳은 결심과 다짐 덕분인지 힘들기는 해도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로부터 다시 40분 정도 뒤에, 아내가 또 메시지를 보냈다.


“오래 기다리고 시간이 걸렸지만 잘 해결됐어요”


하루에도 이런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할 거다. 그렇다고 다른 수많은 일을 소홀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소윤이의 학습, 서윤이 돌봄, 빨래, 설거지, 끼니 챙기기 등등. 다 잘 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아내가 마음을 지켜가며 일상을 수호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느껴졌다. 느껴지니 안쓰럽기도 하고 응원해 주고 싶기도 했다. 달리 방법은 없었고, 오늘 저녁에 나갔다 오라고 할까 싶었다. 퇴근하고 만나면 제안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퇴근 무렵에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오늘 밖에 좀 나갔다 와도 될까요?”


이런 게 부부의 교감인가.


밤에 아내에게 들었는데 사실 오늘도 꽤 큰 상황이 있었다고 했다. 전적으로 아내의 다짐과 결심, 굳은 의지 덕분에 품어진 것 뿐이지, 들어보니 아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먼 훗날, 이 시기를 아내가 어떻게 추억할지 궁금하다. 혹시나 ‘사실은 그때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바라는 건 ‘힘들긴 했지만 그때가 좋았지’인데, 그게 될 지는 모르겠다. 말이 좋아 ‘의지’, ‘다짐’, ‘결심’이지 사실은 한정된 마음의 일부를 조금씩 태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아니길 바랄 뿐이고.


오늘도 날씨가 참 좋았다. 일을 하면서도, 아내와 아이들과 산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할 정도로 산책을 부르는 날씨였다. 일이 조금 일찍 마무리 됐으면 산책을 나갔을 텐데, 생각보다 일이 늦게 끝나서 산책을 나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아내도 자유를 찾아 떠나야 했고.


저녁을 먹은 시간 자체가 좀 늦어서 아내의 자유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고작해야 세 시간 정도였다. 아내가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우리도 산책 나갔다 오자. 지금 다 씻어. 산책 갔다 와서 손만 씻고 자게”


자녀들은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더니 부리나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좋을까 싶었다. 아내가 먼저 나갔고, 우리는 10여 분 있다가 나왔다. 원래 정말 잠깐만, 집 근처만 한 바퀴 돌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마음은 바닷가로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꽤 늦어서 부담스러웠다. 막상 나가니 밤바람이 너무 좋았다. 무장해제가 됐다.


“얘들아. 우리 바닷가로 산책 가자. 엄마 있는 카페로 갈까? 대신 들어가지는 말고 밖에서만 인사하고 돌아오는 걸로. 어때?”

“좋아여”


애들 겉옷을 안 입혀서 나왔는데, 바닷가를 걸으려면 필요할 것 같았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아이들 겉옷을 챙겨서 나왔다. 서윤이는 유모차에서 안 내려왔다. 자기가 걷기 싫다고 했다. 서윤이는 좀 자주 그러는 편이다. 특히 요즘 들어서 더 그렇다. 잘 안 걸으려고 한다.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가 끊임없이 던지는 각종 질문에 저절로 밝게 응대가 됐다. 매일 매 순간 이런 아빠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가 간다고 했던 카페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저기 앞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아내였다. 도착해서 바로 내리지 않고 답하지 못했던 연락들을 처리하느라 조금 늦게 내렸다고 했다. 덕분에 대면(?) 만남이 성사됐다. 미리 약속했던 대로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이제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서윤이도 이런 걸로 슬퍼하거나 떼를 쓰는 일은 거의(아예라고 써도 무방할 정도로) 없다. 다들 참 많이 컸다.


집에 돌아오니 시간이 꽤 많이 늦기는 했지만,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나갔다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밤 산책도 이렇게 매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몸과 마음의 여유가 매일 오늘 같지는 않다.


아무튼 모두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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