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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3. 2023

사무실 없는 삶의 장점

23.05.16(화)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었다. 전국 캠프에 다녀오고 나서 처음 모이는 거였다. 여전히 자녀들이 병치레를 하느라 고생인 가정도 있었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도 기침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열이 나거나 축축 처지는 증상은 없었다.


아내가 잘 갔는지 궁금했다. ‘잘’이라는 수식어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담는 건지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요즘 아내에게 ‘잘’ 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주로 ‘큰 어려움 없이 계획된 일정을 진행했는지?’, ‘마음에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지내고 있는지?’, ‘시간에 맞춰서 무사히 출발 혹은 도착했는지?’ 등의 의미를 담는 듯하다.


“여보. 잘 갔나요?”


라는 오늘 나의 물음에는, 시간에 맞춰서 자녀들과 큰 문제 없이 멀쩡한 마음과 기분으로 갔는지를 묻는 거였다. 쓰다 보니 불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이 중에 하나만 성공해도 ‘잘’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내는 답이 없었다. 그만큼 바쁘고 정신이 없다는 얘기였다.


오후에는 동네 카페에서 일을 했다. 내가 일을 마무리 할 시간과 아내가 일정을 마칠 시간이 얼추 비슷하면 아내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기로 했다. 차 한 대가 카센터에 있어서 아내와 나 누군가 한 명은 기동력이 매우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뭉쳐야 기동력이 상승한다. 마침 아내도 너무 이른 시간에 일정이 끝나지 않은 덕분에, 아내와 자녀들이 내가 있는 카페로 왔다.


일을 하는 공간에 가족이 찾아오는 건 꽤 즐거운 기분을 선사한다. 유독 더욱 반갑다. 회사원 생활을 할 때야 말 할 것도 없고, 회사원이 아닌 지금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인 노동의 시공간에 이상과 낭만이 등장하는 느낌이랄까. 노동의 시간을 끝내고 가족의 품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과 아직 노동의 시간인데 가족이 나에게 오는 건 확연하게 다르다.


“아빠아아아아아”


공공장소인 카페에서는 언제나 조용히 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규칙을 잊게 만들 만큼, 반가움에 흠뻑 젖게 된다. 특히 세 자녀가 다소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나에게 달려올 때는 더더욱. 자녀들은 해맑고 반갑게 등장하고, 아내는 ‘아, 이제 숨 좀 쉬자’하는 표정으로 등장한다.


일 때문에 살 게 있었고, 그것 때문에 아내와 자녀들을 굳이 내가 있는 곳으로 부른 거였다. 아내도 간 김에 장을 봤다. 나와 함께하기 전의 시간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의 퇴근 이후의 시간은 분위기가 좋았다(이렇게 말하니까, 평소에는 대체로 분위기가 안 좋나 싶지만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저녁도 다 먹고 씻는 것도 끝내서 눕기만 하면 됐을 때 아내가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다. 시윤이에 관한 얘기였다. 요약하자면, 영어를 배우는 시간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은 시윤이의 이야기였다. 다시 요약하자면, 누나나 K의 첫째인 형과 같은 수준이기를 원하고 그렇다고 생각하는 시윤이가, 학습 시간에는 동생들과 한 묶음(?)으로 편성이 된다. 아마도 시윤이는 그것부터가 싫었을 거다. 마치 자기가 ‘동생’, ‘아직 어린 사람’으로 취급(?)되는 게 싫었을 거다. 그러니 매우 불성실하게, 그러니까 ‘난 다 아는 건데 왜 이걸 해야 하냐’는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시윤이의 마음이 이해는 됐지만, 그렇다고 바른 태도는 아니었다. 시윤이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나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라’였다. 감정이 실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다정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훈육의 지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지하게, 단호하게, 냉정하게 얘기했다. 시윤이는 그게 조금 서운했나 보다. 낮에 있었던 일을 굳이 밤에 다시 꺼낸 게 속상했을까. 멀뚱히 듣고 있다가 눈이 촉촉해졌고, 이내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도 아내가 위로자의 역할을 맡았다.


나에게 단단히 삐진 ‘척’을 했다. 눈도 피하고, 뽀뽀도 거부하고. 참 신기하게 그게 연기인지 진심인지 너무 명확히 보였다. 낮에, 아내에게도 이 정도 수준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면 좋으련만, 왜 그렇게 낮과 밤이 다른 지킬 앤 하이드가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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