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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3. 2023

연탄의 삶

23.05.17(수)

아내는 수요예배 찬양인도를 해야 했다. 쓸 수 있는 차는 한 대 뿐인데, 오늘은 내가 차를 써야 했다. 아내는 교회까지 세 자녀를 데리고 걸어가는 건 너무 힘이 들 것 같다고 하면서, 내가 나가는 시간에 맞춰서 함께 나가겠다고 했다. 출근하는 길에 교회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예배 시간까지의 공백이 꽤 길어지지만,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했다. 아침도 교회에서 먹이고. 예배 시작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중요한 재료들 집에 두고 오고, 서윤이는 응가 했는데 허벅지에 범벅이고 바지에도 묻고. 부디 평안함 누릴 수 있길”


점심에는 처치홈스쿨 엄마 선생님들과 함께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는데, 아마도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뭔가 놓고 온 모양이었다. 거기에 서윤이 응가 사태는 상상만으로도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과연 평안함을 누리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찬양인도는 잘 했을지 의문이었고.


아내도 나도 각자 바쁜 하루를 잘 살아내고 교회에서 다시 만났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교회에 있었다. K의 아내가 아픈 막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동안 K의 첫째와 둘째는 교회에 있었다. K의 아내가 다시 교회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가족)가 함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저녁에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다. 모든 상황이 마무리 되고 우리도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가 딱 한 시간 전이었다. 아내는 집으로 가는 게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여보. 여보는 그럼 그냥 여기 있어. 저녁은 이 근처에서 먹고. 내가 애들 데리고 걸어갈게”


그렇게 아내는 교회에 남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소윤이는 문구점에 들러도 되냐고 물어봤다. 시윤이도 덩달아서.


“지난 번에도 갔었잖아”

“아니 근데 그때는 제가 갑자기 똥이 마려워서 금방 나왔잖아여”

“그렇기는 하지”


아이들을 데리고 문구점에 갔다. 30년 동안 운영을 하다가 6월 달에 문을 닫는 곳이라 기꺼이 너그럽게 아이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우리는 이 동네에 산 지가 얼마 안 돼서 ‘30년’이라는 세월이 엄청 애틋하게 와 닿지는 않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짧은 시간에도 금방 애정을 가진 곳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큰 폭의 할인을 하고 있다. 소윤이는 이제 조금 안다. 이렇게 큰 할인을 하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는 걸.


소윤이는 한참을 구경 혹은 고민했다. 일기장 하나와 아주 얄궂은 십자수를 하나 샀다. 시윤이는 지갑을 안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누나에게 빚을 졌다. 시윤이는 찰흙처럼 주물러서 모양을 만들고 끓는 물에 넣으면 굳는 지우개 두 개를 샀다. 시윤이는 도대체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적이 있는지가 의문스럽기는 했다. 나중에 서윤이가 조금 더 커서 오빠를 잘 구워 삶으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내어줄 만큼 허술한 녀석이다.


집에 와서는 또 열심히 달렸다. 교회에서 싸 주신 미역국이 너무 유용했다. 아이들은 미역국밥이었다. 하루 종일 땀도 많이 흘리고 모래 놀이도 했다고 해서 샤워도 해 주고. 이 모든 과정에서 나의 지침과 피곤함이 나쁜 감정으로 치환되어 배설되지 않도록 애를 쓰는 것 또한 적잖은 의지와 에너지가 필요했다.


자녀들을 모두 방에 눕히고 나와서 식탁의자에 앉았다. 소파보다 불편한 곳을 찾아서 앉은 건데, 불편해도 앉으면 안 되나 보다. 멍하게 있다가 휴대폰을 보다가 ‘아, 이제 움직여야지’라고 생각만 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시 모터를 가동해서 설거지도 하고 거실도 대충이라도 정리하고. 그러고 나니 얼마 안 돼서 아내가 왔다. 그만큼 늦게 끝났다.


매우 지치고 피곤했지만, 보람차긴 했다. 자신을 불태워 주변을 따뜻하게 하는 연탄이 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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