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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3. 2023

삼치구이와 스낵자장면

23.05.19(금)

오전에만 일을 하고 퇴근했다. 아내는 오늘도 상태가 비슷했다. 목은 아팠고 기운은 없고. 더 심해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았고, 어제와 거의 비슷했다. 어제와 가장 큰 차이는, 나의 이른 퇴근이었다. 점심도 집에서 함께 먹었다. 점심을 먹고 잠깐 쉬다가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낮잠을 재우러 들어가는 거였는데, 오늘만큼은 아내도 좀 잘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도 좀 잤다. 점심을 먹고 나니 너무 졸렸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너무 졸린데 여기서 잠깐만 잘게”


거실 바닥에 누워서 달콤한 낮잠을 잤다. 엄청 잠깐이기는 했지만 달콤하기로는 이루 말 할 데가 없었다. 그야말로 꿀잠이었다.


오후에는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나와 소윤이, 시윤이만 가기로 해서 아내와 서윤이가 아직 자고 있을 때 조용히 나왔다. 서윤이가 깨어 있을 때였으면 분명히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울었을 거다. 잠에서 깼을 때 언니와 오빠가 없다는 걸 알아도 비슷하게 울 것 같기는 했지만.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시윤이는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난 계속 기르는 걸 강력하게 원했지만 시윤이 스스로가 너무 자르고 싶어 했다. 나름 취향도 확고했다. 완전히 짧은 머리는 안 되고 적당히 짧은(사실 짧은 머리는 아니었다. 지금보다 짧을 뿐, 깔끔하게 긴 머리랄까) 머리로 자르고 싶다고 했다. 기꺼이 시윤이의 취향과 의사를 존중했다. 소윤이도 나름 파격적인 변신을 했다. 원래는 숱만 조금 치고 다듬으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갑자기 ‘앞머리도 자르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러니까 이마를 덮는 일자형 앞머리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였다. 마찬가지로 기꺼이 소윤이의 의사를 적극 반영했다. 아주 어렸을 때 말고는 처음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꽤 잘 어울렸다. 소윤이는 만족스러운지 연신 미소를 지었다. 약간은 어색한 듯, 만족스러운 듯, 이상한 듯.


아내는 계속 누워 있었고 내가 저녁 준비를 했다. 아내가 냉장고에 생선이 있다고 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커다란 삼치 토막 네 개가 있었다. 부침가루를 묻혀서 정성스럽게, 맛있게 구웠다. 크기가 꽤 컸다. 살을 발라내는 것도 한참 걸렸다. 접시에 수북하게 쌓였다. 밥을 먹으면서 발라주면 너무 정신이 없고 쉴 틈이 없어서 다 발라내고 아이들을 불렀다.


‘이 정도면 진짜 충분하네’


싶었다. 아이들이 양껏 퍼 먹어도 될 만한 양이었다. 남은 밥이 약간 애매했다. 아이들과 아내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내가 약간 부족한 듯 한 공기 먹을 양은 됐지만, 왠지 아이들이 더 먹는다고 할 것 같았다. 그걸 남겨놔야 했다. 부엌 찬장에 있던 스낵면을 꺼내서 삶고, 어제 먹었던 짜장 양념에 비벼 먹었다. 맛은 별로 없었다. 면이 너무 안 어울렸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자녀들에게 훈육하는 여러 가지 중에서 언행일치가 가장 잘 되는 게, 먹을 때 감사히 먹으라는 거니까.


아내는 계속 기운이 없었다.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 운동을 하러 나왔다. 아내도 그때 침대에 누웠다. 일단 많이 자는 게 우선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피곤할 테니 거의 바로 잠들 것 같았다. 서윤이는 바로 잠들지 않을 듯했다. 아내와 함께 낮잠을 푹 자서 아마 잠이 안 올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갑자기 안방 와서 자겠다고 울고불고”

“누구?”

“서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아빠 기다리라고 했음”

“귀욤”

“여보는 귀엽구나. 나는 열 받는 거 겨우 참았는데. 여보가 지금 와서 저 모습을 보면 더 귀엽다고 하겠지. 진짜 혼자 소파에 있음. 나는 자러 들어왔고”


서윤이는 정말 소파에 멀뚱히 앉아 있었다. 약간은 미소, 약간은 해맑음을 띤 표정으로.


“서윤아. 얼른 방에 들어가서 자”

“네. 아빠”


서윤이는 군말 없이 작은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서윤이는 무엇을 위해 소파에 앉아 있었던 걸까? 나를 기다렸을 리는 없을 텐데. 혹시라도 내가 ‘안방에서 잘래?’라고 물어보기를 기대했나. 덕분에 난 잠들지 않은 막내딸 얼굴 한 번 더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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