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2(월)
시윤이가 아침에 기운이 없다고 했다. 증상만 봐서는 공복이 길어서 당이 떨어졌을 때와 비슷했다. 아침에 깼는데 너무 기운이 없어서 아침을 몇 숟가락 못 먹고 다시 누웠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됐을 때 쯤 다시 일어났는데,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두어 숟가락 뜨고는 끝이었다고 했다. 열이 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정말 공복으로 인한 저혈당의 증상일 가능성도 컸다. 어제 마지막 식사가 국수였는데, 그렇게 많이 먹은 건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엄청 뛰면서 놀았고 꽤 늦은 시간에 잠들었고. 평소에 비해 공복이 길기도 했고, 쓴 기력의 양이 많기도 했다. 종종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도 했고. 그게 아니라면 그야말로 감기와 몸살의 초기 증상일 가능성도 있었다. 난 전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시윤이는 얼마 안 돼서 다시 밥을 먹었고, 제대로 한 끼를 먹었다고 했다. 여전히 기운은 없다고 했다. 내 기억에는 먹는다고 바로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먹고 나서 한 숨 자거나 시간이 지나야 괜찮아졌다. 시윤이는 점심을 먹고 낮잠을 또 잤다고 했다.
아내가 뜬금없이
“북구는 왜 멀까?”
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앱을 열어 봤는데 사진도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조각 케이크 사진이었다. 아내가 얼마 전부터 먹고 싶다고 하던 케이크였다. 처치홈스쿨 엄마 선생님들과 그 근처에 갔을 때 사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계속 생각이 난다고 했다. 엄청 먼 건 아니어도, 그것만 사러 ‘잠깐 나갔다 올’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효율과 실용을 생각하면 ‘다른 무언가를 하러 간 김에’ 가는 게 맞기는 했지만, 인생이 언제나 효율과 실용만 따져서 움직이는 건 아니다. 아내가 먹고 싶으면 다른 거 안 따지고 갈 수도 있는 거다. 아내가 꼭 임신한 게 아니더라도. 그게 참된 부부의 길, 혹은 축구하는 남편의 길이다.
“애들 데리고 000 다녀오는 건 무리일까?”
“여보 몇 시에 오는데요?”
“여섯 시 쯤?”
“응. 집 도착이”
“오키. 후다닥 저녁 먹고?”
“응. 저녁 미리 먹여도 되고”
한참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렸을 때 아내가 이렇게 얘기했다.
“근데 미안하네. 그 정도의 일인가?”
애초에 ‘그 정도의’일은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어영부영 하다 보니 마지막 주문 시간이 임박했다. 아내는 서둘러서 전화로 주문을 먼저 했다. 순전히 아내의 케이크를 위해서, 온 가족이 밤 외출을 단행했다.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일단 자녀들은 집에서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내는 자녀들을 재우고 아주 만족스럽게 케이크를 먹었다. 낮잠을 많이 잔 시윤이와 서윤이가 너무 잠이 안 들어서 다소 부담스러워 했지만, 그런 상황에 굴복할 아내가 아니었다. 소싯적에는 한 뼘 거리의 공간에서도 몰래 숨어서 케이크를 먹던 그녀였다.
아, 시윤이는 다행히 멀쩡해졌다. 역시나 긴 공복이 문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