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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5. 2023

맛이 변하는 치킨

23.05.24(수)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수요예배를 드렸다. 수요예배를 드릴 때마다 항상 조마조마하다. 과연 오늘은 아내와 아이들이 무사히 교회에 올 것인지, 시간에 맞춰서 올 것인지, 아내는 멀쩡한(?) 마음 상태로 올 것인지를 신경 쓰다 보면 내 마음도 쪼그라들 때가 많다. 예배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갈 때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 전화했을 때는 안 받았고, 두 번째 전화했을 때 받았다. 당연히 엄청 바빠 보였다. 바쁘지만 활기찰 때도 있고, 바쁘면서 어두울 때도 있는데 오늘은 약간 후자에 가까웠다. 그래도 무사히 시간에 맞춰서 오기는 했다. 마치 목욕탕에서 온 듯 머리가 젖어 있었지만.


점심도 함께 먹었다. 아내는 돈까스를 싸 왔다. 아침에 빵가루와 계란물을 입혀서 직접 튀겨서 왔다. 그러니 아침이 바쁠 수밖에 없다. 아내의 수고와 바쁨 덕분에 내가 큰 혜택을 누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K와 내가 큰 자녀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산책은 별로 안 하고 놀이터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K와 나를 포함해서 엄마 선생님들이 마실 커피도 사러 갔다. 중간에 떡집도 들러서 꿀떡 한 팩은 자녀들에게 나눠 먹였다. 오늘따라 들르는 곳마다 이런 질문을 했다.


“얘네가 다 두 집 아이들이예요?”


그건 아니고 서너 집 아이들이 섞여 있는 거라고 설명을 했다. 대낮에 아빠 두 명이 많은 자녀를 거느리고 다니는 모습이 흔하지는 않은가 보다. 그렇다고 어떤 연유로 구성된 모임인지까지 설명하려면 너무 멀리 가야 했다. 대충 ‘공동육아’라는 정도만 설명하고 만다.


엄마 선생님들은 교회 마당에 나와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린 자녀들을 재워 놓고 잠깐 밖에 나온 듯했다. 엄청 평화로워 보이고 한적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이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산책에서 복귀한 큰 자녀들은 교회 마당의 꽃밭에 들어가서 한참을 놀았다. 엄마 선생님들의 평화로운 시간도 계속 이어졌고.


나와 K는 남은 오후 시간에도 교회에서 일을 했다. 엄마 선생님들도 꽤 늦은 시간에 일과를 마쳤고, 나와 K도 거기에 맞춰서 일을 끝냈다. K네 가족과 우리 가족이 마지막까지 남았고, 자녀들은 또 교회 마당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냈다. 콩벌레를 찾아서 모으고, 강아지와 놀기도 하고. 어른들은 마당에 선 채로 계속 대화를 나눴다.


K네가 먼저 떠나고 우리도 곧바로 차에 탔다. 저녁을 뭘 먹을지 고민하는데 소윤이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얘기하기는 했다. 사실 어제도 일 끝나고 와서 치킨을 먹었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먹은 건 아니었고. 어제 먹었던 그 치킨 집에 두 마리를 주문했다. 아내는 저녁에 성경공부 모임이 있기도 했고, 치킨이 그렇게 당기는 건 아니어서 안 먹고 교회에 갔다.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다. 서윤이는 거의 못 먹었다. 염지가 너무 매운 치킨이었다. 나도 거의 안 먹었다. 배가 별로 안 고프기도 했고, 아이들 살 발라주다 보니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들 다 재우고 혼자 먹으면 모를까.


애들도 자고 성경공부 모임에서 돌아온 아내도 자러 들어가고 나서, 혼자 먹었다. 어제도 먹었던 치킨이었는데, 다 식은 치킨이었는데 왜 그렇게 맛있는지. 고요함 속에 혼자 우아하게 먹어서 그런 건지, 그냥 치킨은 원래 그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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