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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6. 2023

바닷가에 사는 가족

23.05.25(목)

아내가 아침부터 뜬금없이 연애할 때 사진을 보냈다.


“이때나 지금이나 멋지네 여보”


라는 말과 함께. 10년이 넘는 세월의 폭격은 물론이요, 과다 섭식의 부작용까지 한 몸에 맞은 ‘지금도’ 멋질 수는 없다. 요즘 아내와 옛날 사진을 종종 본다. 아내와 나 사이에 ‘옛날’이라는 단어를 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함께 늙어가는 건 참 좋다. 어차피 늙지 않을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것만큼 감사한 게 있을까. 늙는 와중에 자라는 자녀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으니, 더 할 나위 없고.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교회에 다녀왔다. 소윤이 피아노 수업을 받으러 갔다가 점심 때 K의 아내와 자녀들과 (우리)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고 했다. 밥을 먹고 바로 간 건 아니니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놀 시간이 있었다. K의 첫째와 시윤이가 죽이 잘 맞는다. K의 둘째도 잘 어울리고. 맥락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몸을 쓰면서 놀기도 하고, 블록으로 뭔가를 만들어서 다양한 의성어를 뱉으며 깔깔거리기도 하고. 소윤이는 함께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소윤이 취향의 놀이가 아닌 거다. 소윤이는 뭔가 짜임새가 있는 역할놀이나 순서와 질서가 있는 보드게임 같은 걸 하고 싶어 한다. 오늘도 아내에게 지겹다는 표현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그렇다고 함께 있는 자리에서 거침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옳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훈육, 말은 참 쉬운데.


K의 아내가 빵을 사러 갈 때 소윤이가 함께 갔다고 했다. 소윤이에게는 그게 훨씬 즐거운 시간이었을 거다. 게다가 공감능력이 뛰어난 이모와 함께 갔으니. 자기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받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난 소윤이의 이런 상황은 모르고, 순전히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내에게 퇴근 후 산책을 제안했다. 아예 저녁을 싸 가지고 나와서 밖에서 먹자고 했다. 시간이 그렇게 이르지 않아서 금방 해가 질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냥 보내기 아쉬운 날씨였다. 바닷가에 있는 카페에서 일을 했는데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의 풍경을 참기 어려웠다. 부지런히 저녁을 만들었다. 아내가 사 놨던 불고기를 볶아서 휴대용 밥통에 넣고 비볐다. 휴대용 밥통 하나와 숟가락 다섯 개, 그리고 물통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이미 해가 지고 있어서, 내가 봤던 밝고 맑고 화창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피부로 느끼는 온도도 조금 차가워지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다행히 앉아서 밥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바닷가에 돗자리 하나를 펴고 다섯 식구가 둘러앉았다. 꽤나 청승맞은 모습이었다. 밥통을 가운데 두고 각자 숟가락 하나씩 들고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밥을 떠 먹는 모습이라니. 겉으로는 어떻게 보였을지 몰라도 내적 즐거움과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아, 나는 그랬다. 다른 식구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예상해 보건대, 아이들은 나와 비슷했을 거고 아내는 그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오늘은 특별히 바닷가에 발 담그는 것도 허락했다. 아이들은 바지를 걷고 바닷물로 들어갔다. 고작 발목 정도까지 담그는 건데, 밀려오는 물살을 피하면서 엄청 즐겁게 놀았다. ‘집 앞에서 바닷가 맨발 산책이라니’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녀석 모두 저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연신 터뜨렸다.


바닷물에서 나와서도 바닷가를 꽤 걸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업어주기도 했다. 업어주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둘 다 엄청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아직 업을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아이들도 아직 덜 컸고, 나도 아직 덜 늙었고.


당연히 엄청 늦은 시간에 돌아왔지만, 너무 만족스러운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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