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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6. 2023

빵으로라도 어떻게 좀 해 볼까 싶어서

23.05.26(금)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시윤이와의 일 때문이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 전화로 시윤이에게 얘기를 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고 해야 할까. 점심을 집 근처에서 먹었고, 오후에도 집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할 예정이었다. 점심 먹고 카페로 가면서 집 근처 빵 가게에 들러서 아내와 아이들이 먹을 빵을 샀다. 글쎄, 아내와 아이들이 낮에 전해 주는 그 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게 얼마나 실효(?)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 핑계로 내가 아내와 아이들을 한 번 보러 가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 모습만 보였다.


“엄마는?”

“아, 엄마는 방에서 자고 있어여”

“왜?”

“음, 그건 모르겠어여”


뭔가 직전에 무슨 일이나 상황이 벌어진 건 아닌 듯했다. 아이들의 분위기가 그랬고, 집안의 분위기가 그랬다. 요즘은 틀릴 때도 많지만.


아내도 금방 나왔다.


“여보. 무슨 일이야?”

“아, 그냥 빵 사서 들렀지. 여보는 왜 자고 있었어?”

“아, 그냥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누웠는데 잠들었네”


정말 빵만 전해주고 바로 나왔다.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 모를, 소윤이와 시윤이와 서윤이를 향한 ‘엄마 말씀 잘 들어라’는 당부를 남기고.


나름대로 의지를 발휘해서 퇴근을 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워커홀릭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다만, 찾으면 평생 찾아서 할 수 있는 게 일인 만큼 하다 보면 끝도 없는데 의지를 발휘해 ‘조금 이른’ 시간에 마무리 했다는 거다. 고군분투 하고 있을 아내를 위해.


오랜만에 금요철야 예배에 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매번 금요일마다


“아빠. 오늘은 교회 갈 거예여?”


라고 묻는 아이들의 물음에


“글쎄. 상황 봐서”


라고 답하고 실제로 갔던 게 오래 전 일이었다. 대략 한 달 쯤 전으로 기억했는데, 소윤이는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윤이 다운 미세 기억 능력이다. 사실 몸은 거부하고 있었다. 아내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냥 집에서 쉬고 싶네’


역시나 의지를 발휘해 교회로 갔다. 육체의 피로를 이겨내고 은혜의 파도에 올라타려고 애를 썼다. 피로의 파도에 은혜의 물결이 굴복하고 말았다. 자꾸 눈이 감기고 의식이 끊어졌다.


‘그래. 기도라도 열심히 해 보자’


어림없는 각오였다. 내 뇌에서는 ‘눈을 감으면=잔다’로 고정이 됐는지, 나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추고 중력의 작용에 의해 고개가 땅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내는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 명은 멀쩡해서 다행이었다.


“얘들아. 우리는 먼저 내려가자”


세 자녀를 데리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아이들은 쌩쌩했다. 지치지도 않는 건가. 아내는 꽤 한참 기도를 하고 내려왔다. 아이들은 집에서 나오기 전에 씻겼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집을 말끔하게 치우고 나오는 일만큼이나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을 눕히고 육아퇴근 이후의 시간이 도래하자 거짓말처럼(언제나처럼) 정신이 멀쩡해졌다. 아내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고,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둘 다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월요일도 휴일이라는 걸 뇌에서 인식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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