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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6. 2023

축구도 좋고, 내일도 좋고

23.05.28(주일)

얼마 전부터, 아니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난 뒤부터 계속 ‘축구 한 번 보러 가고 싶은데’하는 생각을 했다. 응원하는 야구팀의 경기는 고사하고, 여기를 연고지로 둔 팀이 아예 없다. 대신 축구는 인기가 많은 곳이고 멀지도 않으니 한 번 가서 보고 싶었다. 원래는 시윤이와 데이트를 하면서 볼까 싶었는데 소윤이도 보고 싶다고 했다. 축구를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 보는 건 재밌다고 했다. 아마도 지난 월드컵 때 대한민국의 경기를 너무 재밌게 봐서 그런 듯하다.


오늘 저녁에 경기가 있어서 가 볼까 생각을 했는데, 아침부터 비가 왔다. 많이 내리는 건 아니었고 부슬부슬 내렸다. 일기예보에도 저녁까지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름대로 기대를 했었나 보다. 아침에 날씨를 확인하고


“아무래도 오늘은 축구 보러 가기 힘들겠다”


라고 얘기했더니 많이 아쉬워했다. 만약에 가능했다면, 처치홈스쿨의 다른 가정에도 얘기해서 같이 갈 사람이 있으면 함께 가려고 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한 아빠 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지붕이 있어서 괜찮지 않겠냐고 했다. 비도 많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면서. 선생님도 가고 싶어 하셨다. 점심을 먹고 나왔을 때는 마침 비가 좀 그쳤다.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오늘은 교회에서 점심을 먹으면 그걸로 교회 일정은 끝이었다.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서 쉬었다. 먼저 축구 경기 표를 예매했다. 나도 처음 가 보는 거라 어느 자리가 좋은지, 아이들과 가기에 괜찮은지 전혀 몰랐지만 일단 예매했다. 처치홈스쿨 선생님에게도 얘기를 했고, 함께 가기로 했다. 표를 예매하고 난 뒤에는 제대로 쉬었다. 아내는 서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낮잠을 잤다. 난 소윤이와 작은방에 누웠다.


“아빠. 잘 거예여?”

“아니. 그냥 잠깐 누워 있자”


언제나 그렇듯, 진심이었지만 지키지 못할 말이었다. 난 바로 잠들었고, 소윤이는 내 옆에 누웠다 나갔다를 반복했다(고 했다). 1시간 30분 정도를 잤다. 엄청 개운했다. 축구장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아이들 저녁으로 먹일 주먹밥과 각종 간식을 쌌다. 자녀들과 운동 경기를 관람할 때 아주 중요한 게 먹거리다. 쉴 틈 없이 먹을거리를 제공해야 체류 가능 시간이 늘어난다. 그렇다고 연신 불량식품(?)만 줄 수는 없으니 몸에 해롭지도 않으면서 체류에도 도움을 주는 간식을 잘 준비해야 한다. 중간에 적당하게 ‘불량간식’도 섞어주고.


주차하기가 힘들 걸 예상해서 1시간을 먼저 갔는데도 이미 주변의 주차 가능한 모든 곳이 만차였다. 그럼 어디에 어떻게 주차를 하라는 건지 막막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다가 아주 운 좋게 축구장 정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예상보다는 수월하게 주차를 끝내고 들어가서 다행이었다.


함께 가기로 한 선생님네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매한 자리가 2층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보였다.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일까 봐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른 네 명에 자녀 다섯 명이고 어린 자녀들이 있어서 일부러 빈자리가 많은 곳을 골라서 예매했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비어 있겠지만 자녀들과 함께 가는 만큼 한산한 환경도 중요해서 그렇게 골랐는데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옆자리는 사람이 없어서 꽤 여유롭게 자리를 썼다. 다만 의자가 자동으로 접히는 의자라 어린 자녀들은 의자에 앉아도 의자가 접혔다. 함께 간 선생님네의 둘째는 결국 만삭의 엄마 무릎에 앉았다. 어른들은 도시락을 사서 저녁으로 먹었다. 자녀들 저녁 먹이느라 다소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원래 스포츠 관람과 우아함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니까. 요즘은 더 비싼 돈을 내면 꽤 쾌적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다행히 자녀 다섯 명 모두 괜찮았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무사히 관람을 했다. 함께 간 선생님네의 둘째가, 큰 소리가 날 때마다 무서워서 우는 게 조금 안쓰러웠지만 그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경기도 재밌게 전개가 되서 어른들도 즐겁게 봤고,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는 오지 않았다. 자녀들과 함께해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큰 일을 마친 것처럼 묵직한 피로가 느껴지면서도 다음에 또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애들 씻기고 눕히니 11시였다.


“우와. 엄청 늦었네”

“그러게. 그래도 내일 휴일이라니. 믿기지 않네”


과감하게 축구를 보러 가기로 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다. 와, 내일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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