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Dec 28. 2023

육아와 웃음 사이

23.05.30(화)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을 하는 날이었고 나도 교회에서 일을 했다. 한 권사님께서 처치홈스쿨 엄마선생님과 자녀들에게 점심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한 날이었는데, 마침 나와 K도 교회에 있어서 함께 먹기로 했다. 주일에 함께 축구를 보러 갔던 가정의 아빠선생님도 일이 있어서 오전 반차를 쓰고 일을 처리한 뒤에 교회로 오셨다.


항상 그렇듯 아내는 바빠 보였다. 집에서 보내는 육아의 시간이 결코 우아하지 않은 것처럼 교회에서 함께 보내는 육아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바쁘고 애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정해진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선생님과 엄마의 역할을 모두 해야 하니까.


보통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어린 자녀들을 재운다. 큰 자녀들은 동생들이 잠들 때까지 함께 누웠다가 동생들이 잠들면 일어나서 교회 마당에 나가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아무튼 엄마 선생님들과 함께 뭔가를 한다. 나와 K가 교회에 있을 때는 우리가 큰 자녀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오늘은 밥을 해 주신 권사님이 엄마 선생님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아내가 권사님과 함께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내가 서윤이를 재웠다. 다른 엄마 선생님도 자녀를 재웠는데 휴대폰으로 물소리를 틀어놨다. 일종의 백색소음이었다. 찜질방에 온 것 같았다. 내가 잠들 것 같았다. 집도 아니고 잠들 만한 상황과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려고 했는데 기분 좋은 물소리에 나도 모르게 살짝 잠들었다. 심지어 코까지 골았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백색소음을 방해하는 공해 소음을 만들었다.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렸다.


오후에도 계속 교회에서 일을 했고, 아내와 자녀들의 일과가 끝날 때까지 있었다. 아직 일이 남아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먼저 집에 가라고 했는데 마침 빗줄기가 굵어졌다. 일을 마무리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갔다. 아내는 무척 지쳐 보였다. 저녁 먹기 전까지 나름대로 아내의 밝은 웃음과 분위기를 이끌어 내보려고 애를 썼지만 아내의 웃음을 보기가 어려웠다. 나의 피로도 조금씩 차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짜증도 찼나 보다. 시윤이와 서윤이가 아주 사소한 걸 잘못했는데 크게 소리를 지르며 뭐라고 했다. 화풀이였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화풀이 한다는 말이 딱이었다. 괜히 아이들이 총알받이가 된 거다. 한껏 화를 내고 상황이 지나가니 더 짜증이 났다.

아이들을 눕히고 운동을 하러 가는 나에게 아내는 ‘나한테 뭐 화 난 거 있냐’면서 왜 그러는지를 물었다. 퇴근하고 아내의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고 얘기하면서,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나도 그냥 지쳐서 그랬다고 했다. 아내도 황당했을 거다. 아내는 일단 알았다고 하면서 대화를 끝냈고 난 집에서 나왔다. 운동을 하면서 나의 잘못에 관해서도 조금 곱씹고, 마음도 누그러졌다. 집에 가면 아내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육아퇴근 후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종 집안일이 많았다. 아내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표정이 아까보다 더 나빠 보이기도 했다. 일단 조금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씻고 나왔는데 아내는 공부방에 들어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 재우고 나면 기도를 하는데 오늘도 기도를 하는 건가 싶기도 했고, 그냥 마음을 다스리려고 들어간 건가 싶기도 했다. 아무튼 아내는 한참을 방에 있었다. 그러다 아내가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운동을 하러 간 사이에 아이들이 자꾸 나오고 장난을 쳐서 더 화가 났고, 아내도 원래 내가 돌아오자마자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하면서. 나는 거실에 있고 아내는 방에 있는데 나도 메시지로 답장을 하는 건 이상한 것 같아서 아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내가 나오자마자 나도 사과했다.


어쨌든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완벽하게 멀쩡해졌는지는 모르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집안일 얘기하니까, 갑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