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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28. 2023

마음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산책

23.05.31(수)

아내와 아이들은 수요예배를 드렸고, 아내는 찬양인도도 해야 했다. 원래 반주를 하는 집사님이 못 나오신다고 해서 처치홈스쿨의 다른 엄마 선생님이 반주를 하신다고 했다. 물론 그 선생님도 두 명의 자녀와 함께 온다. 두 명의 엄마는 앞에서 찬양인도와 반주를 하고, 다섯 명의 자녀끼리 남는 상황이 된 거다. 또 한 명의 처치홈스쿨 엄마 선생님이 계시긴 했지만 그 선생님도 두 명의 자녀가 있었다. 게다가 한 명은 아직 돌도 안 된 아기였고. 오늘은 내가 외부에서 일이 있어서 예배를 함께 드리지 못했다. 과연 아내는 무사히 찬양인도를 했을지, 자녀들은 가만히 기다려줬을지, 그것보다 먼저 집에서는 무사히 나왔을지 걱정이었다. 결과는 퇴근하고 만나서야 들었다. 쉽지 않은 난관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다고 했다.


조금 일찍 퇴근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아직 교회에 있다고 했다. 어제까지 흐리고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날씨가 엄청 좋았다. 맑고 화창한 날씨는 항상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흐리다가 개는 날씨는 특히 더 좋아한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푸른 하늘이 드러날 때 기분이 너무 좋다. 오늘은 ‘개는 순간’을 직접 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제까지 비가 내리다가 구름 한 점 없는 청청한 하늘을 보니 비슷하게 기분이 좋았다. 교회에 도착했을 때 아내와 자녀들은 일과를 모두 마치고 청소와 정리를 하고 있었다.


“여보. 우리 산책 할까?”


아내에게 바로 산책을 제안했다. 아내가 산책 제안은 대체로 거절을 하지 않는 편이다. 아내의 의사를 철저히 존중할 생각이었지만, 아마도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아내는 그러자고 했다. 아내는 저녁에(약 2시간 정도 뒤에) 다시 교회에 와야 했다. 성경공부가 있었다. 아내는 차를 집에다 놓고 거기서부터 산책을 하자고 했다. 그래야 교회에 다시 올 때도 그 차를 타고 올 수 있었다. 난 그냥 교회에서부터 걸어가자고 했다. 다시 교회에 올 때는 집 근처에 있는 내(가 타고 다니는)차를 타면 되니까. 아내는 기꺼이 나의 의견을 수용했다.


교회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문구점도 들렀다. 6월 중순 쯤, 30년 동안의 운영을 마치고 폐점하는 그 문구점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들르려고 한다. 오늘도 들렀고, 아내와 나도 필요한 걸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소윤이는 또 뭔가를 샀다. 곧 불혹을 앞둔 내가 보기에는 ‘세상 쓸 모 없는’ 물건인 ‘마술지우개’라는 거였다. 플라스틱 통 안에 지우개가 들었는데, 그게 보이게도 했다가 안 보이게도 하는 얄궂디 얄궂은 거였다. 물론 소윤이는 자기 용돈으로 샀다. ‘네돈네산’이니까 그냥 둔 건 아니었다. 국민학교 다니던 그 시절(소윤이 나이)의 ‘내’가 생각이 났다. 소윤이처럼 아기자기한 장난감이나 소품에 관심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하교할 때는 꼭 문구점에 들렀다. 어찌 보면 얄궂은 장난감보다 더 유해한, 불량식품을 탐닉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청 비싼 것도 아니고, 고작 몇 백원으로 좀 사 보겠다는데 굳이 말리고 싶지 않았다.


잠깐 집에 들러서 짐의 무게를 줄이고 산책을 이어갔다. 지난번에 해수욕장으로 갔으니 오늘은 그 옆에 있는 항구(?) 쪽으로 갔다. 바닷가를 따라서 계속 걸었다. 해수욕장 끝자락까지 거쳐서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1시간 30분이었다. 너무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나만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아내도 좋아하기는 했는데 체력적으로 버거워했다.


“와, 여보. 나는 너무 좋은데 힘드네”


사실 아내는 걷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연애할 때 직감했다. 그래도 조금씩 적응시킨 덕분에 이 정도까지 변화한 거다.


아내가 성경공부를 하러 가기 위해 출발해야 하는 한계 시간까지 꽉 채워서 걸었다. 아내는 내 차를 타고 교회로 갔고, 나는 세 자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여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밖에서 먹자고 했지만 그냥 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내가 가지밥 할 때 쓰려고 해동시킨 다짐육과 갖은 채소를 넣고 ‘고기 야채 덮밥용 토핑’을 만들었다.


‘모든 음식은 파 기름과 간장으로 통한다’


라는 나의 견고한 요리(꼰대) 철학에 기반을 두고 만든 음식이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는가였다. 다행히 잘 먹는 걸 넘어서서 ‘너무 맛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뿌듯했다. 요리할 맛이 난다.


산책을 오랫동안 한 대가는 ‘늦은 육아퇴근’이었다. 빠르게 진행한 날이었다면 누웠을지도 모르는 시간에 저녁을 먹기 시작했으니 꽤 늦은 거였다. 조금의 후회도 없었다. 산책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나의 모든 마음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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