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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30. 2023

거친 길 위를 걸어갈 때도

23.06.01(목)

아내는 오늘도 새벽기도에 다녀왔다. 나도 아내를 돕기 위해 아이들 방에서 잤다. 아내도 푹 자고, 나도 푹 자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아내가 새벽기도에 다녀왔다는 건 아내에게 들은 게 아니었다. 침대에 누운 아내의 모습을 보고 알았다. 아내는 잠옷이 아니었다. 교회에 갈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자고 있었다.


아내는 교회에 또 갔다. 소윤이 피아노 수업이 있었다. 잘 갔는지 물었는데 ‘겨우 왔다’는 대답을 받았다. ‘왜’ 겨우였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와서 또 학습 잘 하다가 짜증 내서 중단하고”


아내는 주어를 생략하고 보냈지만 누구를 말하는 건지 바로 알아차렸다. 이제 소윤이는 아내에게 ‘짜증’을 내지는 않는다. 혼자 허공에 대고 짜증을 내거나 동생들을 향해 내기는 해도. 소윤이는 짜증보다 ‘반항’을 보일 때가 많다. 아내가 받아내는 짜증 지분의 99% 이상은 시윤이가 가지고 있다. 아내는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나도 되게 짜증이 난다. 나도”


라고 얘기했다. 아내의 인내와 한계가 동시에 느껴졌다. 오후에 전화했을 때는 처치홈스쿨을 함께하는 선생님 집이라고 했다. 그쪽에서 중고거래 할 게 있어서 갔다가 갑작스럽게 들렀다고 했다. 바로 집으로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난 카페에 있었는데 자리를 정리하고 귀가했다. 아내와 자녀들이 없는 집에서는 얼마든지 일 하는 게 가능하다. 커피도 공짜고. 자리를 옮기고 싶기도 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평소 내가 퇴근하는 시간 무렵에 돌아왔다. 아내는 오자마자 저녁 준비에 박차를 가했고 난 남은 일이 있어서 조금 더 했다.


혼자 반찬을 준비하는 아내의 뒷모습이 무척 힘들어 보였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하고 있었다. 김치찌개는 끓기만 하면 됐고, 계란말이는 부쳐야 했다. 아내에게 좀 쉬라고 하고 아내의 자리를 대신했다. 아내는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있겠냐고 했다. 내가 아이들을 잘 단속(?)할 테니 가서 좀 쉬라고 했다. 아내는 주방에서는 사라졌지만 다른 집안일을 했다. 사실 쉰다고 쉬는 게 아니기는 하다. 아이들이 가만히 두지도 않을 테고, 쉬어도 쉬는 기분도 아닐 테고. 효율성을 고려하자면 차라리 일을 하고, 나중에 퇴근하고 쉬는 게 훨씬 낫다.


아내는 아이들을 눕힌 직후에는 체력과 생기가 좀 있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급격히 방전을 향해 달려갔다.


“어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왜긴. 오늘 새벽기도 갔다 왔잖아”

“아, 맞다. 그렇구나”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꽤 거친(?) 삶을 살았고 이사를 오고 나면 좀 나아질까 싶었는데, 이러나 저러나 보람과 사랑, 고단함이 서로 넘쳐나는 건 여전하다. 아내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다 줬다.


오늘은 내가 아내와 함께 놀고 싶어서 ‘들어가서 자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이기적인 남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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