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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30. 2023

매일 새로운 육아리포트

23.06.02(금)

아내와 아이들은 며칠 만에 집에만 있는 날이었다. 오늘도 오전부터 ‘육아 리포트’를 받았다. 아내에게서. 자녀의 새로운 모습을 전달 받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10년 가까이 육아를 했는데도 처음 접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 그야말로 날마다 새로운 육아다.


집에 있던 아내와 아이들은 오후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책을 나갔다고 했다. 차를 타고 바닷가 공원으로 갔는데, 마침 바람을 쐴 겸 드라이브를 나온 처치홈스쿨 선생님과 연락이 닿아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밖이었다. 나도 차가 있었고 산책을 더 하지도 않을 거라 아내와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굳이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변수가 생겼다. 오전처럼 이전에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상황이 금방 종료될 것 같지 않아서, 함께 계시던 처치홈스쿨 선생님도 먼저 가신다고 했다. 나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상황에 비해 아내의 목소리가 평온한 것처럼 느껴졌다.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고, 실제로 그만큼 아내의 공력(?)이 향상됐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느껴졌다. 아내는 매우 온화해 보였다.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나도 비슷했다. 아내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데 별로 동요가 없었다.


그저 궁금했다. 내가 등장하면 시윤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안타깝게도(?)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시윤이는 약간의 평정심을 찾았다. 흔적은 남아 있었다. 눈물자국으로 꼬질꼬질해진 얼굴과 자연인처럼 신발을 신지 않은 채로 흙 위에 선 맨발이 그것이었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마치 막 일을 마친 농부 같았다.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나도 이런 일을 겪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은 다른 이의 시선이 없는 ‘집’에서 주로 그런 일이 생기는데 오늘은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길 한복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오히려 귀여웠다고 했다(물론 문학적 표현에 가깝겠지만). 아마도 집에서처럼 서로를 향한 감정의 교환 작용이라기 보다는 시윤이가 혼자 자기 감정을 허공에 표현하는 것에 가까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드넓은 자연 속이어서 마음이 너그러웠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나도 아내도 괜찮았다. 아마 시윤이가 자려고 누워서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원래 저녁은 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고기를 사려고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의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시윤이는 이미 큰 일(?)을 치르기도 했고, 무척 피곤해 보였다. 소윤이도 마찬가지였는데, 소윤이는 단순한 피곤을 넘어서 몸이 조금 안 좋아 보였다. 잔잔하게 계속 있던 기침이 엄청 심해지기도 했다.


“여보. 오늘 고기는 좀 힘들겠다. 애들이 이래가지고. 그냥 간단하게 먹자”


아이들은 계란밥을 주고 아내와 나는 냉동실에 있는 인스턴트 떡볶이를 먹자고 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집으로 오는데 아내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내가 보냈는지도 몰랐고, 집에 와서 아내가 직접 이야기했다.


“여보. 우리는 애들 재우고 구워 먹는 건 어때?”

“애들 재우고? 여보 교회 안 가? 난 안 먹어도 괜찮아”

“왜. 나 먹고 싶은데. 애들 재우고 구워 먹으면 되지”

“난 진짜 안 먹어도 괜찮은데. 원래 교회 가려고 한 거 아니었어?”

“교회? 안 가면 되지”

“아니야. 난 괜찮아. 다음에 먹으면 되지. 교회 갔다 와. 어차피 소윤이가 저래서 다 같이는 못 갈 거고”

“왜. 난 오늘 먹고 싶은데”


결국 아이들을 재우고 구워 먹었다. 아이들을 눕히고 아내가 마트에 다녀왔다. 아직 잠들지 않았을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엄마와 아빠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솔직히 너무 맛있었고,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얘들아.


집에서 분위기를 내는 최고의 방법은 자녀를 재우고 퇴근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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