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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30. 2023

엄마 옆에서 잘래?

23.06.03(토)

오랜만에(고작 한 주 쉬었지만, 나에게는 ‘오랜 쉼’이다) 축구를 하고 왔다. 아이들은 첫 끼니로 무려 소고기를 먹고 있었다. 어제 아내가 소고기도 사 왔는데 그걸 안 먹고 남겨놨다. 아내는 내 몫도 남겨놨다. 소고기 한 덩어리, 돼지고기 한 덩어리. 아내는 어젯밤에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전혀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보도 좀 그런가? 연속으로 먹는 건?”

“나? 아니? 전혀?”


결혼이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연합하여 사는 것. 아내는 야채샐러드, 나는 고기로 첫 허기를 채웠다.


소윤이는 예상대로 더 안 좋아졌다. 잘 때도 기침을 엄청 하더니 아침에 일어나서는 기운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아침 밥을 먹은 게 다행이었다. 더 안 좋아지면 분명히 아무것도 안 먹을 테니까. 그래도 아직은 엄청 안 좋은 건 아니어서 조금 쉬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소파에 기운 없이 누워있던 소윤이는 그대로 잠들었다. 혹시나 소윤이가 자고 일어나서 몸이 괜찮으면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카페에 잠깐 다녀오려고 했다. 사실 자기 전의 소윤이 상태가 엄청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 많았다. 시윤이와 서윤이도 옷을 미리 갈아입혔고 아내와 나도 나갈 준비를 했다. 준비가 거의 끝났을 때 소윤이가 잠에서 깼다.


“소윤아. 좀 괜찮아?”


소윤이는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기운이 없는 건지 말이 없었다.


“소윤아. 우리 잠깐 카페에 가려고 하는데 갈 수 있겠어?”

“아니여”

“어?”

“못 가겠어여”

“너무 힘들어서? 아, 그래”


분주하게 움직이던 모두가 잠시 멈췄다. 소윤이는 당연히 아무런 식욕이 없었고 계속 소파에 누워 있었다. 나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시윤이와 서윤이가 너무 속상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아픈 소윤이와 소윤이를 간병(?)할 아내는 집에 남고, 내가 시윤이와 서윤이만 데리고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시윤이의 반대에 부딪혔다. 자기도 엄마와 함께 집에 있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는 엄마와 떨어지더라도 밖에 나간다고 했고. 나가고 싶어 하는 서윤이만 데리고 나가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지만, 시윤이를 집에 두고 가면 왠지 소윤이가 제대로 못 쉴 것 같았다. 시윤이가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자비는커녕 오히려 짜증을 낼지도 몰랐고.


“시윤아. 모두 다 안 나가거나 아빠랑 시윤이랑 서윤이만 나가거나. 이 중에서만 선택할 수 있으면? 그래도 그냥 집에 있을 거야?”

“네”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 속 좀 그만 썩이지. 결국 아내가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집 근처의 빵 가게를 다녀왔다. 나간 김에 아주 잠깐 바람도 쐬고. 소윤이는 소파와 안방 침대에 번갈아 누우며 휴식을 취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소윤이가 조금씩 괜찮아지는 게 느껴졌다. 점점 말이 많아지고 웃음도 생겼다. 무엇보다 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소윤이와 함께 누웠던 아내는 깊이 잠들었다. 아이들 저녁으로는 오므라이스를 해 줬다. 아이들이 선정한 ‘아빠가 해 주는 음식 Best 3’에 들어가는 음식이다. 오므라이스, 볶음밥, 계란밥이 입상작인데, 사실 다 같은 음식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성심성의껏 만들었다. 여러 야채를 잘게 썰어서 볶고, 밥을 덮을 계란이불(?)도 예쁘게 부치고. 소윤이가 잘 먹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심지어 처음 떠 준 것을 다 먹고 더 먹었다.


아내와 나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내의 주문이 있었다. 그냥 라면이 아닌 ‘각종 재료를 넣고 끓인 라면’이었다. 마찬가지로 성심성의껏 준비했다. 면보다 야채가 많을 정도로 냉장고에 있는 다양한 야채를 모두 넣었다. 10,000원을 받아도 과하지 않을 만큼 양질의 야채가 듬뿍 들어간 슈퍼채소라면이었다.


“소윤아. 혹시 잠깐 나갔다 올 수 있겠어?”

“네. 괜찮아여”

“힘들면 안 나가도 돼”

“진짜 괜찮아여”


진짜 괜찮아 보이길래 물어봤다. 소윤이보다는 시윤이를 위해서 잠깐 산책을 했다.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하던 소윤이가 마침 ‘치아바타’가 먹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집 근처의, 가 본 적은 없지만 혹시나 팔지도 모를 만한 빵 가게에 들를 겸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소윤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정상을 향해 가는 느낌이었다. 소윤이가 먹고 싶었던 치아바타는 없었고 대신 다른 빵을 샀다. 소윤이는 빵도 잘 먹었다. 괜찮아 보이기는 했어도 소윤이의 체력이 많이 떨어졌을 것 같아서, 산책은 아주 짧게 끝내고 왔다.


소윤이가 엄마와 자고 싶다는 얘기를 슬쩍(동생들이 모르게) 했는데, 시윤이와 서윤이가 순순히 용납할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소윤아. 엄마 옆으로 가”


라고 하고 싶었다. 매서운 두 녀석의 눈과 귀를 피할 방법이 없어서 소윤이의 요구를 일단을 들어주기 어려웠다. 소윤이도 순순히 수긍했다.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고 자러 들어가려고 할 때, 마침 소윤이가 깼다.


“소윤아. 아까는 동생들이 있어서 소윤이가 하자는 대로 못 했어. 엄마 옆에서 잘래?”

“네”


소윤이에게 기꺼이 아내의 옆자리를 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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