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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Dec 30. 2023

불꽃축제가 열리는 동네

23.06.04(주일)

다행히 소윤이의 감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는 하루 만에 끝났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보기에도 훨씬 좋아 보였고, 소윤이 스스로도 어제보다는 낫다고 했다. 식욕도 평소처럼 돌아왔다. 그래도 기침은 여전히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갈 때는 마스크를 씌웠다.


저녁에 집 근처 바닷가에서 불꽃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꽤 대대적인 홍보도 했고 차량 통제까지 하는 걸 보면 많은 사람이 몰릴 것 같았다. 우리는 집에서 슬슬 걸어가면 되니까 가 볼 생각이었다. 처치홈스쿨의 다른 가정들은 갈 지 말 지 고민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이번 주 내내 아픈 가정도 있었고, 시간이 너무 늦어서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가정도 있었다.


오후 예배와 목장 모임, 성경공부까지 있는 날이었다. 엄마들과 자녀들은 목장 모임을 마치고 다들 우리 집으로 갔다. 성경공부를 하는 아빠는 세 명이었고, 성경공부를 마친 뒤에 아이들과 함께 저녁으로 먹을 치킨과 피자를 사서 집으로 갔다. 동네 곳곳에 무리 지어 이동하는 사람이 평소보다 많았다. 차가 안 막히던 곳에서 차가 막히기도 했다. 함께 축제에 가려던 한 가정은 주차를 하지 못해 그냥 집으로 가기도 했다.


성경공부 끝난 시간이 꽤 늦기도 했고 치킨과 피자를 찾는 데 시간도 좀 걸렸다. 자녀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배고픔이 충만했다. 15명 가까이 되는 대규모 인원이라 꽤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다.


자녀들은 불꽃축제에 가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각각 난리였다. 지난주 내내 감기를 앓다가 이제 조금 회복한 가정의 자녀들은 ‘아무래도 축제에 가는 건 어렵겠다’는 엄마와 아빠의 말을 듣고 속상해서 울기도 했고, 아직 고민하고 있는 가정의 자녀들은 ‘우리는 불꽃축제에 가는 거냐?’라며 끊임없이 확답을 요구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빠. 우리는 갈 거져?”


라며 혹시나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까 노심초사였고. 우리는 가깝기도 하고 소윤이의 몸 상태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서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이미 아이들과 굳게 약속을 하기도 했고.


결국 다 가기는 했다. 저녁 먹은 걸 정리하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펑, 펑’하는 엄청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불꽃축제가 시작한 거다. 강렬한 폭죽 소리는 고민을 잠재웠다. 급히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집 앞 차도에서도 불꽃이 터지는 게 보이기는 했지만 건물에 가리기도 했고, 바닷가 쪽으로 가 보고 싶기도 했다.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는데,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많아졌다. 엄청. 그동안 이곳에서 본 적 없는 엄청난 인파였다. 까딱 잘못하면 아이들 잃어버릴 것 같았다. 해변 쪽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도 볼 만 했다. 불꽃 자체도 화려하고 멋졌지만, 내가 사는 곳 바로 근처에서 이런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를 한다는 것 자체도 재밌었다. 불꽃이 모두 터지고 사람들이 한 순간에 빠져나가느라 꽤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가고 나면 움직일 생각이었다.


함께 왔던 두 가정은 차를 우리 집 근처에 댔는데, 일대가 마비였다. 차들이 움직이지를 못했다. 우리는 먼저 집으로 들어왔다. 뭔가 우리만 편한 것 같아서 괜히 송구한 기분이었다. 두 가정 모두 돌아가는 게 고역이었다. 3분이면 움직일 거리를 30분씩 걸렸으니 말 다 한 거다.


“여보. 우리도 이렇게 피곤한데 다들 엄청 피곤하겠다”


아내의 말처럼 바로 집으로 들어와서 아이들 씻기고 잘 준비를 해도 피곤한 마당에, 아직도 집에 도착하지 않은 나머지 가정들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희망이 있었다.


“여보. 여보가 내일도 쉰다니”


어쩌면 그것 때문에 우리가 가장 여유가 넘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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