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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03. 2024

몸은 바쁘게, 마음은 여유롭게

23.06.05(월)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아이들 방에서 잤는데 아이들은 없었다. 다들 아내 옆에 가 있었고 배고프다고 하면서 아내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토요일 아침에 축구를 하다 보니 쉬는 날 내가 더 먼저 일어나서 아내의 늦잠을 보장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생각을 깊이 한 건 아니었는데, 기왕 잠에서 깼고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난리고, 아내는 아직 일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아이들을 안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얘들아. 나와. 아빠가 아침 해 줄게”


감사하게도 어제 교회에서 받은 밥과 반찬이 있었다. 아내는 엄청 늦게까지 잤다. ‘아직도 자나?’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을 정도로.


오늘은 별 일이 없었다.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토요일에 못 갔던 카페에 가기로 했다. 나간 김에 밖에서 시간도 보내고 올 생각이었다. 카페는 아주 조그마한, 앉을 자리가 몇 군데 없는 곳이었다. 아이들과 앉아서 있다가 올 만한 곳이 아니었다. 아내와 나의 커피만 한 잔씩 사서 바로 나왔다.


다음 행선지가 정해진 건 아니었다. 딱히 떠오르는 곳도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어봤다. 소윤이는 서점, 시윤이는 운동장이나 공원을 얘기했다. 둘 다 조금 더 원하는 곳이 있는 거지 꼭 거기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나도 어디든 상관없었다. 아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고르라고 했더니 잘 못 골랐다. 결국 다시 아내에게 공이 넘어왔고, 아내는 서점을 선택했다.


“그럼 운동장은 내일 가자”


아이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서윤이는 서점으로 가는 길에 잠들었다. 서점에 가기는 했지만 소윤이는 소품과 장난감(?)에 훨씬 관심이 많았다. 자기 용돈으로 살 만한 가격인지 확인하고 조용히 내려놓는 게 대부분이었다. 누나가 좋아하는 소품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시윤이가 오히려 책을 열심히 읽었다. 도서관에 가서 제대로 읽을 때였다면, 읽지 않는 걸 권할 만한 책도 많았지만 오늘은 그냥 뒀다. 서점에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아내는 뜬금없이 영어 문법책을 한 권 샀다.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느라 파닉스 공부와 연습을 열심히 하다 보니 학구열이 불타올랐나 보다. 몇 년 전에 서점에 갔을 때 화학 문제집을 샀었다. 책장 속에 고이 보관되고 있다. 중고서점에 ‘최상급 미개봉’으로 팔아도 될 만한 상태로.


소윤이가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본 책도 있었다. 종이접기 책이었다. 소윤이는 그걸 사고 싶어 했지만 소윤이의 전 재산을 털어도 살 수 없는 값이었다. 근처에 있는 중고서점에 가 보기로 했다. 거기서도 시윤이는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하나씩 골라서 자리를 잡고 읽었다. 소윤이는 뭘 했는지 잘 모르겠다. 거기는 소품이나 장난감 같은 게 없었는데. 아, 종이접기 책을 유심히 봤나 보다. 중고서점이다 보니 새 책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종이접기는 시대가 변한다고 내용이 크게 변하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았을 거다.


아내는 시윤이가 얼마 전부터 우주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하면서 우주와 관련된 책을 하나 사 줘야겠다고 했다. 아내가 몇 권의 책을 골라왔는데, 내가 그 중에서 가장 그림이 없고 줄글 위주로 구성된 책을 골랐다. 그게 내용도 제일 좋기는 했다. 요즘 시윤이의 독서 행태를 보면 충분히 소화 가능한 수준이었다. 아내는 시윤이만 사 주고 소윤이는 안 사 주면 소윤이가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소윤이가 자기 용돈으로 살 결심을 하고 고른 종이접기 책을 사 주기로 했다.


저녁은 밖에서 먹었다. 나도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하고 내 주변의 지인들도 대부분 좋아하는 파스타, 피자 가게였다. 역시나 오늘도 너무 만족스러웠다. 당연히 아이들도 엄청 잘 먹었다. 많이 시킨다고 시켰는데도 약간 부족하다고 느꼈을 만큼. 아내와 아이들 모두 배가 부르다고 한 걸 보면, 부족하게 시킨 게 아니라 내 양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건가. 그래도 즐거웠다. 밥 먹고 바닷가도 조금 걸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는 아내와 영화를 봤다. 휴일의 마지막인데 오랜만에 영화라도 하나 봐야 하지 않겠냐는 데 뜻을 모았다. 마침 보고 싶었던 영화도 있었고. 이렇게 잘 놀고 있는데 아직도 하루가 더 남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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