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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03. 2024

낮에는 아내가, 밤에는 내가

23.06.07(수)

오전에 일정이 있어서 갔다가 일을 마치고 교회로 갔다. 점심 시간 즈음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치홈스쿨의 다른 엄마 선생님들과 자녀들도 함께였다. K도 일을 마치고 온다고 했는데 일정이 조금 늦어졌는지 점심시간에 딱 맞춰서 오지는 못했다. 교회에서 함께(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다른 엄마선생님, 자녀들과) 밥을 먹을 때마다 여전히 어색하다. 관계가 어색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의 상황이 어색하다. 직장인일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는 것도 모자라서 다른 가정의 엄마, 자녀들까지 함께하다니.


밥값을 아낀 대가는 몸으로 때우고 있다. 웬만하면 설거지를 하려고 한다. 사실 조금이라도 아내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남편의 마음일 때가 더 많다. K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오늘은 K가 없어서 아내와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했다. 꽤 좋은 시간이었다. 집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나란히 설 공간도 없거니와 식기세척기가 짝꿍이 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자녀들을 데리고 커피도 사러 다녀왔다. 어린 자녀들은 낮잠을 자고 큰 자녀들만 데리고 갔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곳을 걸어야 할 때가 많고, 인도가 있어도 차가 드나드는 골목이 많아서 굉장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내 성향상 더 그렇다. 교통사고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 평소에 내 자녀들과 함께 있을 때도 굉장히 보수적으로 보호한다. 오늘은 혼자 다섯 명을 데리고 다녀야 하니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시윤이보다 어린 자녀도 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하듯 다소 엄하게 하기도 어려우니 더 주의깊게 살폈다.


K의 첫째가 카페에서 파는 계란빵을 먹어봤는지, 그게 먹고 싶다고 했다. 어른들은 커피를 먹으면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는 건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니냐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사실 아무것도 안 먹는 건 아니다. 오후에 간식을 먹기는 한다. 다만 굉장히 건강한 간식일 뿐). 계란빵은 너무 번잡스러워질 것 같아서 옆에 있는 쿠기를 샀다. 한 사람에 하나 정도씩은 먹을 수 있을 만큼. 착한 자녀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 만족했다. 커피를 기다리면서 쿠키를 먹고 있었는데 친절한 사장님께서 아이스크림 한 컵을 주셨다. 두 스쿱 정도의 양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이 너무 지루할까 봐 준다고 하시면서 숟가락까지 5개를 챙겨주셨다.


“우와. 얘들아. 너무 감사하다. 그치?”


아이들에게 숟가락을 하나씩 나눠주려고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생각이 났다. K의 첫째와 둘째는 감기 기운이 아직 남아서 점심을 먹을 때도 집에서 따로 끓여서 가지고 온 물을 먹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는 건, 내가 그 아이의 아빠일 때나 가능한 위법(?) 행위였다(아빠여도 책망을 들을 법하다). 그렇다고 두 아이만 빼고 나머지 아이들만 먹이는 건 너무 비인격적인 처사였고. 그렇다고 다 함께 먹지 말자고 하면 뜻밖의 아이스크림에 잔뜩 신이 났던 아이들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실망할 것 같았고. 30초 정도 고민했다.


“안 되겠다. 아무래도. 이 아이스크림은 우리가 못 먹겠다. 가서 엄마선생님들 드리자”

“왜여?”

“아, 00이랑 00이는 아직 기침하고 그래서 차가운 거 먹으면 안 되잖아. 그렇다고 우리만 먹으면 00이랑 00이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쿠키만 먹고 아이스크림은 엄마 선생님들 드려야겠어”


착하고 성숙한 자녀들은 큰 잡음 없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커피를 받아서 다시 교회로 복귀했고, 난 다시 일터(교회 2층)에 앉았다. 엄마선생님들과 자녀들이 오후 일정을 마칠 때까지 교회에 있었다. K와 K의 자녀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와 함께 동네 문방구에 또 갔다. 문 닫을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자녀들은 기회만 되면 가려고 한다. 자녀들은 폐업 전 폭탄 할인에 이성을 잃고 마구 지갑을 열었다. 용돈 보유자인 K의 첫째와 소윤이는 가장 적극적으로 여러 물건의 가격과 용도를 살폈다. 둘째들은 아빠 지갑에 신세를 져야 하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수동적이었다. 막내들은 아직 뭘 모르고 이것저것 집어 보기에 바빴고.


역시나 얄궂은 물건의 대향연이었다. 600원이어도 아깝기 그지없는 물총이 대표적이었다. 그래도 자녀들은 행복해했다. 엄청 큰 이득을 본 소비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고. K의 아내와 나의 아내는 교회에 있었다. 다시 교회로 가서 산 물건을 조금 가지고 놀다가 헤어졌다. 아내는 저녁에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다. 저녁으로 김밥을 먹는다고 해서 나와 아이들도 김밥을 먹기로 했다. 김밥가게에서 김밥을 받아서 헤어졌다. 아내는 다시 교회로 갔고, 우리(나와 아이들)는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돗자리고 의자고 아무것도 없이 맨바닥(계단)에 앉았다. 바림도 조금 불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 익숙한 광경은 아니었을 거다. 그럴 싸한 장비를 펴지 않는 이상 항상 비슷하긴 하지만 오늘도 아마 꽤 처량해 보였을 거다. 우리는 행복했는데.


김밥을 먹고 나서는 바닷가를 조금 걷다가 꽤 높고 많은 계단을 올라서 바닷가와 연결된 공원으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당연히 잘 올라갔는데 서윤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라갔다. 어른인 나도 끝까지 올라가면 숨을 헐떡이게 될 정도의 긴 거리였는데 한 번도 안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물론 계단을 모두 오르고 난 뒤에는 바로 유모차에 탔다.


저녁을 이미 해결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퍽 가볍게 했다. 그렇다고 퇴근이 이른 건 아니었다. 산책을 한 덕분에 애초에 시간이 늦어지기도 했고,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는 이것저것 치우고 정리하느라 시간을 쓰기도 했고, 다 끝내고 나서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정신줄을 놓고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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