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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03. 2024

장기체류자

23.06.09(금)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교회에 갔다. 가지 않아도 되는,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이었는데 갔다. 저녁에 모여서 전도사님께 드릴 반찬을 만들고 금요철야예배를 드려야 하기는 했지만, 저녁 일정이었다. 아내는 낮부터 교회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콩국물은 샀고). 아내도 집보다 교회가 편할 때가 있는 건가.


아내는 나에게도 조금 일찍 올 수 있으면 와 달라고 했다. 반찬을 만들 때 아이들을 봐 줄 어른이 필요했다. K의 아내와 자녀들도 함께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일찍 일을 마치지는 못했고 평소보다 늦지 않는 정도로 마무리하고 교회로 갔다. 아내와 K는 이미 반찬을 만들고 있었고 자녀들은 놀고 있었다. 평일을 끝내고 주말을 맞이하는 금요일이라 기분이 좋은 동시에, 한 주의 피로가 누적되어 큰 피로감을 느끼는 날이기도 했다. 이른 시간부터 교회에 머물며 잠시의 쉴 틈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이것 또한 나의 역할이었다. 물론 자녀들은 엄청 좋아했다. 자녀들은 교회에서의 체류 시간이 긴 건 언제나 환영한다. 그렇다고 내가 교회에서의 긴 체류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쉴 틈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다.


저녁은 김밥을 사서 먹었다. 서윤이는 오늘도 한 입에 하나씩 넣어서 먹었다. 입이 많이 커졌나 보다. 1인분도 다 먹었다. 양도 많아졌나 보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예배를 드려야 할 시간이었다. 내 몸은 이미 예배를 마치고 자정 쯤 된 듯한 피로도를 발산하고 있었다.


“아, 여보. 오늘 힘들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 바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예배가 막 시작됐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바른 자세로 집중해서 예배를 드리라고 얘기했는데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조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생소한 모습이 아니라서 괜찮았으려나.


기도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정신을 잃었으니까. 열심히 기도하는 아내를 두고 세 자녀를 데리고 먼저 로비로 내려왔다. 아내는 오늘도 한참 기도를 했다. 시윤이도 예배시간에는 거의 잠들기 직전이었다. 아무리 졸려도 대놓고 누워서 자지 않는 시윤이도 오늘은 너무 피곤했는지 거의 누울 것처럼 나에게 기대서 눈을 감았다. 잠들지는 않았다. 시윤이도 예배가 끝나고 나니 조금 생기를 찾았다.


차가 두 대였다. 서윤이는 오늘도 내 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얼마나 달달한 시간인지 모른다. 특유의 까랑까랑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얘기하는 서윤이의 표정을, 고개를 돌려 보고 싶은 유혹을 참으며 운전을 해야 한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도 무척 행복하다.


집에 와서 긴장(?)이 풀리니 몸이 더 풀어졌지만 의지를 가지고 자지 않았다. 어떻게든 즐겨야 하는 불금이니까. 다만, 내일은 토요일이고 아침 일찍 축구를 하러 가야 하니 조절은 했다. 아예 자기 전에 옷도 갈아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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