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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03. 2024

체육인의 삶

23.06.10(토)

알람소리에 즉각 눈을 떠서 지체 없이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잔 걸 매우 뿌듯하게 생각하면서. 축구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바로 교회에 가야 했다. 아이들은 이미 아침을 먹었고 아내와 나는 아침 겸 점심 느낌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교회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하니 안 먹으려고 했는데,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눈치여서 그냥 먹자고 했다. 안 먹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내가 더 맛있게 먹었다. 고수까지 듬뿍듬뿍 넣어서.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함께 예배도 드리고 텃밭에 가서 잡초도 뽑고 점심도 함께 먹었다. 햇볕이 꽤 강해서 잡초 뽑는 게 꽤 힘들었다. 오래 한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 30분은 했을까 싶은데, 그것도 꽤 고됐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텃밭으로 뛰어갔던 자녀들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하나 둘 씩 흥미를 잃고 질문을 했다.


“언제까지 해여?”


그 조그마한 텃밭 하나를 가꾸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잘 가꾸지도 못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경작활동을 하는 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아무튼 너무 힘들어지기 전에 텃밭활동을 종료했다. 나는 이미 땀을 한 바가지 흘리긴 했지만.


다 함께 점심을 먹고 나니 다들 피곤이 몰려오는 듯했다. 원래 오후에는 운동장에 가서 체육활동(이긴 하지만 그냥 야외놀이)을 하려고 했는데 아빠들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오히려 나는 괜찮았다. 아마 집에 가만히 있었으면 잠이 엄청 쏟아졌겠지만 밖에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다. 예정되었던 체육활동은 취소하고 그쯤에서 귀가해야 하나 고민하는 기류까지 아주 약하지만, 형성이 됐다. 아이들은 이미 운동장에 가는 걸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볕이 뜨거웠지만 그늘에 있으면 시원했다. 그늘 쪽에 돗자리도 펴고 캠핑의자도 펴고 자리를 잡았다. 엄마들은 커피를 사러 가고 아빠들은 바로 아이들과 함께 놀기 시작했다. 놀 거리는 다양했다. 축구공, 농구공, 킥보드,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원래 함께 모여 체조도 하고 몸풀기도 하려고 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알아서 잘 놀아서 생략했다.


한참 놀았다. 3시간은 놀았나 보다. 소윤이는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시윤이는 축구와 농구를, 서윤이는 킥보드와 간식에 열중했다. 서윤이를 비롯한 각 집의 어린 자녀들은 간식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머물기 어려웠을 거다. 엄마 선생님들이 그늘에 앉아 있었다고 편한 게 아니었다. 어린 자녀들의 수발(?)을 드는 게 생각보다 고단한 일이다.


실컷 놀고 저녁 먹을 시간 즈음에 헤어졌다. 아내와 나는 외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놀 때는 몰랐는데 다 놀고 나니 급격하게 피로감이 몰려왔다. 집에 가서 뭔가 차려서 먹이는 게 귀찮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탈이 나서 토하고 고생했을 때, 마지막으로 갔던 식당이 있다. 그 식당이 원인이 아니었는데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날 이후로 그 식당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곳의 만두전골을, 난 물비빔냉면을 먹고 싶었다.


“소윤아, 시윤아. 000 진짜 싫어? 거기 때문에 탈이 난 것도 아니었잖아”

“음. 엄마, 아빠가 간다고 하면 가도 되는데 굳이 가고 싶지는 않아여”

“엄마가 거기 만두전골이 너무 먹고 싶으시대. 너네도 여기 살면서 계속 안 갈 수는 없잖아. 오늘 한번 가 보자. 엄청 맛있을 거야”


그렇게 아이들을 설득해서 겨우 갔는데,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메뉴판에 만두전골이 없었다(정확하게는, 흐리게 ‘비활성화’ 되어 있었다).


“사장님. 만두전골은 안 하나요?”

“아, 네. 겨울에만 해요”


다시 나왔다. 사실 아내와 나에게는 더 큰 욕구(?)가 있었다. 물회가 먹고 싶었다. 아이들이 먹을 음식이 정말 아예 없어서 배제된 것 뿐이었다.


“여보. 진짜 전화 해 볼까?”

“그럴래? 그래. 한번 물어봐”


혹시 아이들 먹일 음식을 포장해서 가도 되는지 물어봤다.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돈까스를 하나 포장해서 횟집으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엄청 많이 먹지는 못했다. 운동장에서 쉴 틈 없이 간식을 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 많이 먹지 않은 것 뿐이지 조금 먹은 건 아니었다. 밥 먹고 나서 항구 산책도 잠깐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체육인이 된 듯한 하루였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축구하고, 하루 내내 아이들과 운동하고. 계속 즐거웠고, 억지로 참고 뭔가를 했던 순간은 잠시도 없었지만 모든 걸 끝내고 나니 이루 말하기 어려운 무거운 피로가 내 몸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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