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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03. 2024

다친 딸을 대하는 아빠의 자세

23.06.11(주일)

새벽(오전 7시는 아침인가 새벽인가)에 빌라 청소가 있었다. 지난 달에 아내가 나갔는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나가기 싫어해서 내가 나가겠다고 했다. 알람을 맞췄는데, 못 일어났다. 소윤이는 자기가 깨어 있으면 깨우겠다고 했는데, 소윤이도 그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청소 불참의 대가는 혹독하다. 벌금 만 원이다. 이곳으로 오고 나서 벌금 낸 게 한번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의 교회 일정은 목장모임이 끝이었다. 성경공부는 없었다. 목장모임을 마치고 교회 마당에서 조금 놀다가 K의 가족과 함께 잊을 만하면 가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는 동네로 갔다. 물론 이번에도 아이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소윤아, 시윤아. 너네 샌드위치가 먹고 싶은 건 아니지? 그냥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으려고 핑계를 찾는 거지?”

“더 놀고 싶기도 한데 샌드위치도 맛있어서 그런 거기는 해여”


샌드위치는 전채(appetizer)로 먹기로 했다. 다소 해괴하기는 하지만, 샌드위치는 어차피 저녁을 대체할 만큼 배가 부르지 않으니 전채요리처럼 먹고 제대로 된 시가는 다른 곳에서 하자는 말이었다. 아예 작정(맛만 볼 작정)을 해서 그런지 매우 부족한 양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다른 날보다 훨씬 만족감이 높았다. 배가 부르는 것을 포기하니 오히려 맛과 질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진짜(?) 저녁식사는 지난 번에 갔던 국수가게에서 하기로 했다. 엄마들이 먼저 가서 동태와 순서를 살피는 동안 자녀들은 놀이터에서 놀았다. 자기들끼리 추가한 이상한 규칙이 있는 잡기 놀이를 했다. 나도 함께 참여했다(가마니처럼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지만, 자녀들이 자꾸 요청했다). 신나게 놀고 있는 와중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이제 오면 되겠어요”

“어, 알았어”


바로 자녀들에게 ‘이제 가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소윤이가


“아빠. 이거 한 판만 더 하고 가면 안 돼여?”


라고 물어봤다. 그러라고 했다. 술래를 피해 도망가던 소윤이가 미끄러지면서 넘어졌다. 소윤이가 엄청 크게 울었다. 오른쪽 무릎과 정강이 쪽이 꽤 많이 쓸려서 피가 나고 있었다. 소윤이는 아프기도 하고, 피를 보니 무섭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봤으니 창피하기도 했는지 엄청 속상하게 많이 울었다. 일단 소윤이를 진정시키고 (진정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소윤이의 울음과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일단은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과 ‘공감만 해서는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실시간으로 격렬하게 충돌했다. 소윤이는 알코올로 소독하는 게 너무 아플 것 같다고 하면서 울음에 울음을 더해갔다. 공감도 공감이지만 진정시킬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윤아. 괜찮아. 피가 조금 나서 그렇지 많이 안 다쳤어. 좀 진정해 봐.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 아니면 아예 집으로 가든가”


소윤이는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다분히 충동적인 발언이었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면 그런 결정을 한 걸 속상해 할 게 뻔한.


“소윤아. 지금 속상하다고 막 얘기하지 말고. 진짜 집으로 가고 싶어? 소윤이가 가고 싶으면 가도 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면”

“안 갈래여”


근처에 문을 연 약국에 가서 처치에 필요한 것들을 사 왔다. 당장 소윤이에게 가장 두려운 건 알콜 소독이었다. 그게 지나가고 나니 확 진정이 됐다. 무릎 쪽 상처는 꽤 크기도 했고 많이 쓸리기도 했다. 나머지 상처는 아주 가벼웠다. 소독을 하고 치료용 밴드를 붙이고 붕대도 감아서 고정을 시켰다. 아내와 내가 소윤이에게 붙어서 처치를 하는 동안 시윤이와 서윤이는 K의 가족과 함께 먼저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소윤이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까 그냥 집으로 갔으면 후회했을 거라고 하면서 밥도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다른 놀이터에 갔다. 아까 소윤이가 넘어졌던 놀이터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짚라인이 있는 곳이었는데, 전부터 가 보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한참을 놀았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첫째와 둘째들은 자기들끼리 놀았고, 나와 K는 각각 막내 자녀를 맡았고, 아내와 K의 아내는 놀이터를 돌며 대화를 나눴다.


오늘도 날씨가 너무 좋았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었는데 근처에 있는 카페에도 잠시 가기로 했다. K가 사 주겠다고 했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라 다른 손님은 없었다. 덕분에 잠깐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어른들은 커피, 아이들은 빵을 먹었다. 쉴 틈 없이 빵을 입에 넣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보통 정신이 없게 마련인데, 오늘은 모든 것을 품는 밤이었다.


“아, 너무 좋다”


다들 이 말을 계속했다.


“아빠. 아까 집에 안 오기를 정말 잘했어여. 그랬으면 엄청 후회했을 거예여”

“그러게. 엄마, 아빠도 너무 즐거웠어. 엄청 피곤하긴 하지만.


급히 처치했던 소윤이 다리는, 집에 와서 다시 처치를 했다. 여전히 아파하기는 했다. 아내와 나는 오늘도 좋은 날씨를 누리기 위한 요금으로 ‘늦은 퇴근’을 지불한 덕분에 엄청 피곤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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