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윤이의 외박

19.02.13(수)

by 어깨아빠

홈스쿨 모임이 있어서 차를 두고 출근했다. 퇴근할 때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장모님의 친한 친구분이 파주(처갓댁)에 오셔서, 아내는 홈스쿨을 마치고 파주로 넘어오기로 했다.


처갓댁에 있던 아내가 퇴근 시간에 맞춰 날 데리러 왔다. 차에 탔더니 발렌타인데이 선물이라며 마카롱을 내밀었다. 오. 맑음케이크 마카롱. 30 중반 줄, 결혼 7년 차임에도 발렌타인데이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긴 좋았다. 결혼 연차가 찰수록 기념일은 이런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메이저 기념일(결혼기념일, 생일 등)을 제외한 나머지 마이너 기념일(발렌타인/화이트 데이, 빼빼로데이, 100 단위 기념일 등)은 그냥 그 핑계 삼아 꽃도 주고 작은 선물도 주고. (그렇다고 화이트데이 때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야. 매번 챙기는 건 또 기대감이 사라지니까)


장인어른은 퇴근이 늦으셔서 먼저 저녁을 먹었다. 나와 아내, 아이들, 장모님, 장모님 친구분이 함께 먹었다. '상큼하게'(19.02.04/월 일기 참고) 등촌칼국수를 먹었다. 심정적으로 지겨웠던 것뿐일까. 국물이 꽤 시원하고 맛있어서 또 절제하지 못하고 폭풍흡입을 하고 말았다. 애들은 먹일 게 마땅치 않았다. 소윤이가 요즘 매운맛에 입문하긴 했어도, 목구멍에서 기침을 유발할 정도로 칼칼한 그 국물을 먹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시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만두를 시켜 만두를 반찬 삼아 먹였다. 테이블 중앙에 팔팔 끓는 냄비가 있는 것 치고는 애들이 협조를 잘해주긴 했다.


장모님 친구분이, 소윤이가 낮에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다면서 저녁 먹고 돌아가는 길에 치킨까지 사갔다. 그것도 무려 2마리나. 딱 봐도 치킨을 먹을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나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다.


소윤이는 치킨에서 매운맛이 난다며 잘 먹지 못했다. 이미 저녁을 먹기도 했고.


집에 가려는데 소윤이가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겠다며 익숙한 레퍼토리를 읊조렸다. 역시 뻔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자고 갈 준비를 하나도 안 해왔다, 나중에 미리 정하고 오자 등등. 그러다 아내는 장난스럽게 소윤이한테 얘기했다.


"그럼 소윤이 혼자 자고 와"

"엄마랑 아빠는?"

"엄마랑 아빠는 집에 가고"

"아 싫어. 엄마랑 아빠도 같이"

"그럼 그냥 집에 가야지"


소윤이는 혼자 심각했다.


"엄마. 나 혼자 자면 자고 가도 돼여?"

"어. 괜찮다니까"

"그럼 혼자 잘게여"

"진짜?"


소윤이는 계속 고심했다.


"엄마랑 아빠도 같이 잤으면 좋겠어"

"그럼 그냥 집에 가고 나중에 할머니 집에서 자자"

"그래도 할머니 집에서 자고 싶은데"


소윤이는 계속 왔다 갔다 했다.


"엄마. 그냥 집에 가서 잘래"

"엄마. 여기서 자고 갈게여"


파주할머니와 오늘 처음 봤지만(어릴 때도 봤지만 기억에 없는) 본인을 굉장히 환대하는 친구할머니의 적극적인 공세에, 결국 소윤이는 나 홀로 외박을 선택했다. 사실 소윤이의 고민은 무의미했다. 본인은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소윤이는 이제 하루 아니라 며칠이라도 할머니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시윤이만 데리고 집으로 왔다. 아마 그 시간이었으면 소윤이가 함께 왔어도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을 텐데,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소윤이만 떼어놓고 온 건 처음이었다. 자려고 방에 들어가서 누웠을 때도 방이 어찌나 넓어 보이던지.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예측할 수도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을뿐더러, 틈틈이 마음에 되새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내 인생에 '소윤이의 부재'를 경험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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