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14(목)
"시윤아. 누나 어디 갔어?"
"어떠. 어떠(없어)"
"어디 갔지? 찾아봐"
"어떠. 어떠"
누나가 없는 상황이 신기하긴 해도 그리 아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하머(할머니), 하버(할아버지)까지, 다른 가족들은 잘도 부르면서 유독 누나를 부르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건가.
밤늦게 가족 모두의 일정이 있어서, 아내는 시윤이 낮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말은 한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냈다는 뜻이다. 거기에 소윤이도 없고.
퇴근하면서 처갓댁에 소윤이를 데리러 갔다. 날 보고는 반갑게 달려와 안기긴 했는데 이내 다시 할머니 품으로 달아났다.
"할머니네서 또 잘 거야"
할머니랑 헤어지기 싫다면서 울적한 기운을 잔뜩 발산했다. 카시트에 타서 할머니랑 인사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외치면서. 속상한 마음이 이해가 되기는 했지만 그대로 두면 집에 갈 때까지 울 것 같아서 강수를 뒀다.
"알았어. 그럼 할머니한테 돌아갈게. 소윤이 내려주고 올게. 알았지?"
"....(멈칫)"
"그렇게 하면 되는 거지?"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해? 소윤이가 할머니 보고 싶다고 계속 우니까"
"안 울 거야"
"소윤아. 할머니 보고 싶어서 속상한 것도 이해가 되고, 울어도 돼. 그런데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소윤이가 지금 우는 건 괜히 악 쓰면서 우는 거 같아"
"오늘은 하루 자고 왔더니 할머니가 더 보고 싶어서 그런가 봐"
"그래. 그럴 수 있지. 울고 싶으면 울고, 참을 수 있으면 참아 봐"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애써 우울한 기분을 유지하려는 소윤이에게 툭툭 장난을 치니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다 괜히 억지로 뚱한 표정을 짓고. 아무튼 집에 거의 다 왔을 때는 멀쩡해졌다.
"소윤아. 엄마, 아빠는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지"
"아닌 것 같은데. 전화도 안 하고"
"아니야. 할머니랑 놀다 보니까 까먹어서 그런 거야"
"그래? 진짜야?"
"그럼 아빠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소윤아. 점심에는 짜장면 먹었어?"
"응. 짜장면 먹었지"
"맛있었어?"
"근데 짜장면 먹다가 할머니가 갑자기 낮잠 자라고 해서 탕수육은 먹고 싶은 만큼 못 먹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내가 짜장면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낮잠을 자러 들어가자는 거야"
"그래서 자러 들어갔어?"
"아니. 안 잤지"
"자러 들어가긴 했는데 안 잤다고"
"그렇지"
장모님이 아직 정확히 모르셨나 보다. 이제 소윤이에게 '낮잠'은, 특히 집에서 자는 낮잠은 기록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신화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는 걸.
홈스쿨의 실제적인 대표(?)이자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선교사님이 서울에 오셔서, 부모교육 함께 듣는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다. (매주 토요일 선교사님의 동영상 강의를 함께 보고 있다) 7시 30분에 교회에서 만나 저녁으로 도시락을 먹고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다들 작은 사이즈의 도시락 하나만 시키거나 유부초밥 하나 시켰는데 우리만 큰 사이즈로 두 개나 시켰다. 애들이랑 같이 먹을 걸 계산하고 큰 걸 시켰는데, 애들은 잘 먹지 않아서 결국 나만 배 터지게 먹었다. 역시 찌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
모임이 꽤 길어져서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다행히 소윤이, 시윤이는 그 늦은 시간까지 커다란 감정의 붕괴나 흔들림 없이 평상심을 잘 유지했다. 아침에 8시도 안 되어서 일어났다던데, 낮잠 한숨 안 자고 그 시간까지 버틴 소윤이도 대단하고. 두 돌도 안 된 주제에 쌩쌩하게 잘 노는 시윤이도 대단하고. 물론 차에 태우고 얼마 안 되어서 둘 다 곯아떨어졌다.
자기 잠들면 꼭 엄마가 안고 가야 한다는 소윤이의 유언(?)을 지켜주기 위해 아내가 소윤이를 안고, 난 시윤이를 안았다.
힘들긴 해도 역시 네 명이 다 있어야 안정감이 있구만.
(물론, 둘 중 하나라도 깼으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