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15(금)
아침에 일어났더니 펄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예고에 없던 눈이라 무려 2시간이나 걸려 출근했다.(평소에는 30분) 다들 곤히 자고 있어서 조용히 빠져나왔는데, 소윤이는 잠에서 깨 내가 없는 걸 알고는 슬피 울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소윤이가 깨서 밖에 나갈 수 있을 쯤에는 눈이 다 녹아버렸다. 기왕 온 거 좀 쌓여 있지.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에는 소윤이, 시윤이가 제대로 된 눈 구경도 못했다. 날이 춥지도 않고, 눈이 오지도 않다 보니 뭔가 썰매장 분위기(?)가 안 느껴져서 썰매장도 한 번 못 갔네. 과연 겨울이 가기 전 썰매장에 갈 수 있을까. 편의시설이 좀 잘 되어 있는 곳에 가자니 사람이 많다고 하고, 동네에 있는 후진 곳에 가자니 썰매 타는 것 말고는 너무 할 게 없고.
퇴근할 무렵이 되자 또 눈이 오길래 걱정했는데, 다행히 막히지는 않았다. 아내는 스타필드에 있다며 연락을 했다. 누구랑 갔나 했더니 또 장모님, 장모님 친구분을 만났다고 했다. 스타필드로 데리러 갔더니 소윤이는 또 울적한 상태였다. 할머니랑 헤어지기 싫어서.
소윤이는 공주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아내랑 나는 그동안 공주 드레스를 사 주지도, 입히지도 않았다. 소윤이한테 잘 안 어울리기도 했고, 아내와 나의 취향도 아니었고. 여자애들은 클수록 공주 옷, 드레스에 대해 욕구가 생긴다더니 소윤이도 그랬다. 아무리 소윤이가 좋아해도 밖에 입혀서 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화려한 색과 무늬의 공주 옷은 집에서만 가끔 입히곤 했다. 그러다 어제 장모님 친구분이 마트에서 공주 드레스를 하나 사주셨다고 했는데, 소윤이가 직접 골랐다고 했다. 그걸 오늘 입고 나왔다. 일단 채도가 매우 낮은 핑크색이라 괜찮았다. 내 딸이기에 애정을 조금 보태자면,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소윤이는 그 옷을 매우 귀히 여겼다. 먹다가 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아. 이거 내 소중한 옷인데"
하면서 매우 호들갑을 떨었다고 했다. 그래, 소윤아. 그 정도는 아빠도 괜찮다. 앞으로도 그런 드레스로 고르도록 해 봐.
아내가 잘 다독거려서 차에 타고는 금방 울음을 그쳤다. 어제 소윤이가 충분히 먹지 못했다고 말했던 그 탕수육을 장모님 친구분이 사 주셔서 저녁 반찬으로 먹였다. 동네 중국집에서 파는 싸구리 탕수육도 웬만하면 잘 먹는데, 오늘 그건 정말 별로 맛이 없었다.(맛이 없다고 했지, 안 먹었다고는 안 했음) 시윤이는 잘 안 먹었고 소윤이는 엄청 잘 먹었다.
소윤이는 무척 졸려 보였다. 항상 졸려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더 졸려 보이는 날이 있다. 그런 와중에 소윤이는 오늘도 날 따라 교회에 가겠다고 했다. 소윤이의 상태를 보아하니 오늘은 데리고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소윤아. 오늘은 소윤이가 너무 졸려서 안 될 것 같아"
"아니야. 나 안 졸려. 같이 갈 거야"
"내일 토요일이니까 아빠랑은 내일 놀고, 오늘은 엄마랑 자면 되지"
"싫어. 아빠랑 같이 가고 싶어"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니까. 어제도 늦게 잤잖아. 그러다 정말 아플 수도 있어. 그럼 내일 채은이도 못 만나고, 준서 생일잔치도 못 갈 텐데"
"아니야. 같이 갈래여"
소윤이는 완강했다. 할머니네 집에서 자고 오기도 하고, 아침에 잠깐이라도 날 못 본 것이 아빠랑 별로 시간을 못 보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아빠. 나 아빠랑 같이 갈 거에여. 알았지여?"
같이 가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내가 너무 졸렸다.
"여보. 나 딱 15분에 좀 깨워줘"
안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덮고 누웠다. 15분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결국 잠들지 못하고 그냥 누워서 눈 감고 있다가 나왔다. 소윤이는 나를 보더니 다시 설득을 시작했다.
"아빠. 나 오늘 같이 가도 되지여?"
"소윤아.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안 된다니까"
"아. 싫어. 같이 갈래에에에에"
샤워하고 나와서도 여전히 소윤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없는 소윤이의 설득에 살짝 흔들리기도 했다.
'그냥 데리고 가 볼까?'
졸려서 떼쓰거나 짜증 내는 것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진심으로 소윤이의 체력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요 며칠 계속 너무 늦게 자서 잠이 부족했으니 오늘은 좀 푹 자야 할 것 같았다.
"소윤아. 오늘은 진짜 안 돼. 오늘은 엄마랑 자고 내일 아침부터 아빠랑 많이 놀자"
"으아아아아아아아"
소윤이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맨발로 따라 나와 매달리기까지 했다. 서럽게 우는 소윤이를 억지로 들여보내고 서둘로 교회로 갔다.
예배를 끝내고 아내에게 연락해 보니 금방 재웠다가 다시 소환되어 방에 누워 있는 중이었다. 다시 나오긴 했지만, 항상 그렇듯 시윤이에게 끌려 들어가는 것으로 아내의 하루는 끝.
나는 혼자 조금 더 놀다 끝.
소윤아, 아빠랑 내일 많이 놀자.
시윤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