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16(토)
하루 종일 세 건의 일정을 소화했다. 우선 오전에 수정이(아내 친구)네 부부가 놀러 왔다. 밖에서 본 것도 아니고, 집에서 밥을 먹은 것도 아니고 차나 한 잔 하면서 가만히 앉아 얘기를 나눈 건데(혹은 나누려고 했는데) 그것 마저도 쉽지 않았다.
우리 애들은 수정이가 사 온 빵과 케이크를 먹는다고 아예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둘 다 참 식탐이 많은 것 같다. 채은이는 오히려 빵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낮잠 시간이 겹쳐서 그런지 자주 칭얼댔다. 아주 가끔씩 아이들이 모두 안방으로 들어가는 순간도 있었는데,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안방에만 있어줘도 윤택한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는데 안방 체류시간은 매우 짧았다. 왜들 그렇게 자기 엄마, 아빠 무릎을 좋아하는지.
오열하는 채은이를 안고(부둥켜 잡고) 있는 수정이네를 떠나보내고 애들 점심을 먹였다. 채은이를 주려고 만들었던 새우볶음밥을 줬다. 소윤이는 김치까지 곁들여 아주 맛있게 먹은 반면, 강시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먹다 말고 짜증 내다가 식사를 중단했다. 그냥 밥투정인 것 같은데, 아직 못 알아듣는 척을 하니 방법이 없다. (분명 척이라고 생각한다) 소윤이는 식사 태도가 불성실하면 다음 식사시간까지 물을 제외한 일체의 간식을 금지하고 있지만, 시윤이는 잘 되지 않는다. 훈육이 통하면서도 안 통하는 애매한 터널의 시기다.
밥 먹이고 시윤이 재우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 오후 한복판이었다. 부모교육 갔다가 바로 돌잔치에 가야 해서 일찍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아내는 며칠 전 성공적이었던 고데기 시술(?)에 공을 들였다. 소윤이도 고데기로 머리끝을 좀 말아줬다. 본인도 엄청 좋아하고, 내가 보기에도 잘 어울렸다. 옷은 소중한 공주옷. 오늘 그걸 입어야 한다며 어제부터 그렇게 애지중지했다. 누나는 새 옷에 머리 세팅까지 했는데 시윤이는 자다 일어나서 집에 있는 (물려받은) 옷 중 가장 외출복스러우면서도 과하지 않은 걸 골라서 입혔다. 머리는, 세팅할 머리가 없으니 pass. 햇빛 아래에 있으면 유난히 더 민머리 같아 보이는 시윤이의 가녀린 모발이 참 슬프구나.
소윤이랑 시윤이는 오늘도 빵순이, 빵돌이의 면모를 드러냈다. 어른들의 허기 채움용 간식으로 준비된 빵을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아, 오늘은 아내까지 합류했다. 그럼 그렇지. 너네가 누굴 닮았겠니. 낳은 엄마, 아빠 닮았겠지.
돌잔치 시간이 부모교육 시간이랑 살짝 겹쳐서 평소보다 빨리 나와서 돌잔치에 갔다. 돌잔치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소규모였다. 우리 가족이랑 장모님, 장인어른, 모르는 가족 (세 식구)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족이었다. 가족도 생일 맞은 아기의 엄마, 아빠의 형제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전부였다. 그냥 함께 모여 식사하는 정도랄까. 인원이 소규모인 것에 비해 애들은 굉장히 많았다. 그 많은 아이들 중 소윤이랑 시윤이만 핏줄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빠 쪽 사촌이거나 엄마 쪽 사촌이거나 그랬다. 애들한테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나. 소윤이랑 시윤이는 누가 보면 한 친척인 것처럼 어울려서 놀고 그랬다.
거기에 소윤이는 요즘 자주 동냥하는 게 있는데, 바로 영상 동냥이다. 누가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 옆으로 스윽 가서는 곁눈질로 보다가 아이 엄마나 아빠가 가까이 와서 보라고 얘기하면, 떡하니 한 자리 잡고 앉는다. 오늘도 어떤 아이가 콩순이를 보고 있었는데 그 옆에 딱 붙어 서 있었다.
시윤이는 오기 전에 하도 이것저것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밥은 거의 안 먹었다. 소윤이는 좋아하는 것 위주로 나름 성실히 먹었고. 그래도 또래 아이들이 많은 데다가 소윤이랑 시윤이가 잘 어울려서 평화로운 식사가 가능했다. 순간순간 벌어지는 긴급 상황에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움직이시고.
식사 마치고 장인어른, 장모님과 잠깐 카페에 들렀는데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굳이 할아버지 차 타고 가겠다길래 소윤이 카시트를 장인어른 차에 옮겨줬다. 잠깐이라 그냥 할머니랑 뒤에 앉아서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카시트에 안 타면 경찰 아저씨들한테 벌금 받아'라는 핑계(라고 하기에는 진짜 법규지만)를 많이 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니면 그냥 우리 차를 타고 가라고 해야 했는데, 씨름하기 싫어서 맹 귀찮았지만 소윤이의 요구를 들어줬다.
애들이 성가시게 한 건 아닌데도 정신이 없었다. 카페에 사람이 워낙 많고 그만큼 시끄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긴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소음 감상을 하다 일어난 느낌이었다.
소윤이는 할머니랑 헤어지기 싫다며 울긴 했지만 꽤 늦은 시간이고 집에 가는 거리가 좀 돼서, 가는 길에 잠들었다. 시윤이도. 하루에 세탕을 뛰었더니 몸이 은근히 피곤했다. 앉고 설 때마다 '어유. 어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침부터 잔뜩 꾸미고(?) 나간 게 아쉬워서 내일 교회 갈 때도 같은 옷을 입고 가기로 했다. 나도, 아내도, 소윤이도. 시윤이는 입혔던 옷이 너무 더러워져서 다른 걸 입히기로 했다.
애들 재우고 아내가 이것저것 부탁하고 시키는데 내가 굉장히 가볍고 즐겁게 반응했다. 일체의 짜증이나 귀찮음을 섞지 않고.
"여보. 왜 그러지?"
"나. 내일 축구하니까"
"아. 뭐야. 평소에도 그랬으면 참 좋겠네"
누가 들으면 내가 평소에는 엄청 괴팍 떠는 줄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