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17(주일)
아침에 왜 이렇게 늦나 생각해 봤는데 이게 다 애들 때문이다. 애들이 일찍 일어날 때는 어쩔 수 없이 같이 부지런해졌는데, 요즘은 조금 늦게(그래 봐야 8시 언저리. 예전에는 6시고 7시고 마구잡이로 일어났다) 일어나니 나도 늦장을 피우게 된다. 다 애들 때문이다.(가장 늦게 일어나 꾸물댄 사람의 덧없는 변명) 그중에서도 오늘은 정말 왕창 늦었다.
아내와 소윤이를 먼저 내려줬다. 얼마나 늦었는지 교회 옆 주차장은 당연하고, 조금 떨어진 학교 주자창에도 자리가 없어서 길가에 주차를 했다. 아내는 본당으로 내려갔을 테고, 난 시윤이랑 바로 자모실로 갔다.
자모실에 가면 참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있다. 소윤이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자모실에 와서 권세 없는 엄포를 연발하는 엄마, 아빠에게 계속 짜증 내는 아이. 끊임없이 엄마의 가방을 뒤지며 놀거리(엄마에게는 일거리)를 찾는 아이. 계속해서 뭔가 먹는 아이. 가만히 앉아서 손으로만 사부작 거리는 아이. 참 여러 모양의 아이들이 있다. 그만큼 부모들도 제각각이고.
자모실에 갈 때마다 시윤이는 정말 수월한 아이라고 느낀다. 탁 내려놓으면 장난감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나 없어도 혼자 잘 논다. 그러다 또 때가 되면 내 옆에 와서 놀고. 다른 친구들 장난감에 흥미를 보이며 다가갈 때도 "시윤아. 그거 친구 거야"라고 얘기하면 바로 돌아서고. 솔직히 자모실에서는 내가 졸지만 않고 집중만 잘하면 예배 잘 드릴 수 있다. 시윤이는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 전국의 자모실을 지키고 있는 엄마, 아빠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예배가 끝나고 나랑 시윤이가 식당에 들어서니 아내는 자리도 맡아 놓고, 밥까지 타 놓은 상태였다. 그러고 나서 소윤이를 데리러 갔다. 예배에는 늦어도 밥 먹는 건 언제나 재빠른 우리 가족의 모습을 반성해 본다.
소윤이의 새싹꿈나무 공포증(?)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금요일, 토요일쯤에는 얼른 새싹꿈나무에 가고 싶다고 얘기도 한다. 뭐가 좋은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무튼 허세는 아니다. 자기 배를 어느 정도 채운 시윤이가 또 나가겠다고 난리를 피워서 아내가 먼저 데리고 나갔다. 아직 밥을 먹고 있는 소윤이에게 말을 걸었다.
"소윤아. 오늘은 새싹꿈나무에서 무슨 말씀 들었어?"
"아빠. 2월 말씀이여?"
"아니 아니. 목자님이 설교하신 거, 어떤 내용이었냐고"
"까먹었어여. 열심히 듣기는 했는데 기억이 안나여"
"아. 그래?"
"아빠. 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막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외국사람들이 와서 괴롭힌 거야. 그거 뭐더라. 음. 그거 뭐지. 어. 어. 이렇게 긴 거 뛰어넘는 거"
"응? 그게 뭐야? 아빠 잘 모르겠는데"
"옛날에 신림동 할머니 집에서 했던 거"
"신림동 할머니 집에서? 뭐지?"
"그. 그. 엄청 긴 거 막 뛰어넘는 거. 줄 같은 거 막 돌리면서"
"아. 줄넘기?"
"아. 맞아여. 줄넘기. 그 줄넘기 같은 거로 외국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을 때리고 괴롭힌 거야. 그래서 막 도망쳤는데 앞에 바다가 있어서 하나님이 배를 탈 수 있도록 해주셨대여"
외국사람=애굽사람으로 추정되고 배를 타고 갔다는 건, 홍해의 기적 이야기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뒤섞인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소윤이의 설교 후기를 나름 흥미롭게 잘 들었다.
축구를 하러 가기 전까지 어떻게 동선을 짤지 아내와 고심했다. 축구하는 장소가 집 근처였다. [목장모임 시작하기 직전까지 내가 함께 있다가 아내가 나를 교회에 내려주고 아내는 애들이랑 카페에 간다. 거기 있다가 목장 모임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나를 태우러 오고 함께 집에 돌아간다. 그러고 나면 나는 축구, 아내는 독박육아]
목장모임 직전까지 내가 함께 있는 건, 최대한 시윤이의 잠 타이밍을 늦추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카페에 가서 내 목장 모임 시간이 끝날 때까지 (시윤이가 잠든 채로) 버틸 수 있으니까. 시간을 때우기 위해 카페에 가서 내 커피만 샀다. 얼추 목장모임 시작 시간이 되어서 다시 교회에 내렸다.
"여보. 화이팅. 끝나면 연락할 게"
"그래"
잠시 화장실에 들러 일을 보며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목자 집사님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집사님. 오늘 000집사님이 급한 일이 생겨서 모임을 못할 것 같아요]
오잉. 1시간 전에 온 카톡을 그제야 확인했다.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 무슨 일이야?"
"나 목장 모임 취소됐대"
"진짜? 그럼 데리러 갈 게"
"그래"
헤어진 지 10여분만에 다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시윤이는 그새 잠들어 있었다. 어쨌든 계획대로 잘 되고 있었다. 시윤이가 잠드는 게 이 계획의 99% 이상을 차지하니까. 소윤이는 나랑 편의점에 가서 빼빼로와 우유를 샀다. 오늘 또 물어봤다.
"소윤아. 소윤이는 카페 오는 거 진짜 좋아?"
"그럼"
"왜?"
"엄마랑 아빠랑 얘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모르긴 몰라도, 소윤이도 나름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부디 시윤이의 주일 낮잠시간이 오래도록 유지되었으면 한다. 소윤이는 빼빼로 끝부분(초콜렛이 묻지 않은)을 시윤이를 줘야 한다며 차곡차곡 모아 놨다. 이걸 호의로 봐야 하나, 농락으로 봐야 하나. 몇 개 없는 빼빼로를 아낌없이 엄마, 아빠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괜찮다며 사양해도 끝내 먹으라고 권하는 걸 보면 시윤이한테 하는 것도 진심 어린 호의 같긴 한데 말이다. 시윤이는 적당한 시간(나의 축구 시간을 위해 자리를 정리해야만 하는)에 깼다.
"여보. 이제 가자(여보. 더 늦으면 나 축구 늦어지니까 이제 가야 돼)"
"그래"
집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소윤이가 말했다.
"오늘 공기 깨끗하니까 놀이터에서 놀면 좋겠다"
선뜻 대꾸하지 못하고 아내를 쳐다봤다. 아내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그래. 일단 집에 갔다가 이따 나가자"
용감했다. '생각해 보자'도 아닌 '나가자'라니. 소윤이 같은 아이를 상대할 때 이런 확언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지 못한다. 아내는 나가겠다고 결심한 거였다. 아내의 호기를 응원했다.(마음속으로) 다행히(?) 505호 사모님과 만날 것 같다고 했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누구든 만나는 게 (철저히 내 위주로) 안심이 된다.
열심히 축구를 하고 집 앞에 왔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소윤이었다.
"아빠"
"어. 소윤아"
"어디에여?"
"아빠 집 앞인데. 소윤이는 어디야?"
"우리 이제 밥 먹고 들어가는 길이에여"
"아. 누구랑?"
"파주할머니랑 할아버지랑여"
"아. 그래? 어디서 먹었어?"
"북촌손만두여"
"아. 그렇구나. 걸어갔어?"
"아니여. 할아버지 차 타고 갔지여"
"그렇구나. 소윤이도 지금 오고 있는 중이야?"
"네"
"그래. 아빠도 지금 집 앞이야. 여기서 만나서 들어가면 되겠다"
"네. 아빠 좀 이따 만나자여. 제가 끊을게여"
잠시 후 아내와 아이들이 장인어른의 차를 타고 나타났다. 장모님이랑 장인어른은 막판에 잠깐 오신 거라, 거의 밥만 함께 드시고 돌아가신 거였다. 그래서인지 소윤이는 오히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 부지런히 애들을 씻기고 재울 준비를 했다. 재우는 건 아내에게 맡겼다.
며칠 전부터 오늘 저녁에는 쭈꾸미를 먹자고 아내랑 얘기했었다. 그것 때문에 오늘 저녁에도 아내는 자기 양껏 먹지 않았다고 했다.
"왜. 그래도 그냥 배불리 먹지"
"에이. 여보랑 쭈꾸미 먹기로 했는데"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사이, 쭈꾸미 집에 전화를 해서 미리 주문을 했다. 후다닥 샤워를 하고 쭈꾸미를 찾으러 갔다. 차로 15분-20분 정도의 거리였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고 나왔으면 분명히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했을 텐데, 집에 거의 다 갔을 때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혹시 잠들었나'라고 생각하며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때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여보 어디야?"
"이제 거의 다 왔어"
"시윤이가 또 안 잤어?"
"시윤이는 금방 잔 거 같은데, 내가 더 먼저 잠들었어"
"아. 진짜? 그래도 아주 좋은 타이밍에 깼네"
들어가자마자 쭈꾸미를 흡입했다. 아내와 이런 게 행복이라며 낄낄거렸다. (반나절 가까이 애들과 홀로 씨름한) 아내는 어떤지 몰라도, 난 정말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날 반겨주는 아이들도 있고, 모든 걸 받아주는 아내도 있고. 이따금씩 거기에 돈도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그거야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아무튼 매우 매우 만족감이 높은 주일이었다. 여보, 한 주간 또 열심히 내 몫을 해 볼 게. 아, 참. 이번 주 수요일부터 수요 축구 시작이더라. 그냥 그렇다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