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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07. 2024

이심전심, 치킨전심

23.06.14(수)

오늘도 함께 수요예배를 드렸다. 난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걸어가는 게 너무 더워서 차를 가지고 왔었다. 예배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소윤이가 받았다.


“아빠. 왜여?”

“아, 엄마는?”

“엄마 지금 머리 감고 계셔여”

“너네는 준비 다 했어?”

“네. 우리는 준비 다 했어여”


마침 차도 있었으니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사실 데리러 간다는 게 큰 의미가 없기는 하다. 어차피 아내도 차를 타고 교회에 올 테니까. 그래도 아내는 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향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아빠’, ‘남편’, ‘육아동반자’로서 의지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굳이 집으로 갔다. 아이들은 나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 현관 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아내는 젖은 머리를 흩날리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아내의 준비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다르게 표현하면, 아내가 본인의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게 꽤 오래됐다는 말이다.


점심도 함께 먹었고, 오늘도 자녀들을 데리고 커피를 사러 갔다. 오늘도 나 혼자였다. 자녀들은 여섯 명. 게다가 카페도 조금 멀었다. 나 혼자 걸어도 왕복 40분은 걸릴 만한 거리였다. 날도 꽤 더웠다. 억지로 간 건 아니었다. 밥 먹고 산책도 하고, 자지도 않는데 함께 누워 있어야 하는 큰 자녀들이 안쓰럽기도 해서 자원한 거였다. 다들 말을 잘 들으니 힘들지는 않았지만 거리가 길어지고 날씨가 더워지니 조금 힘들기는 했다. 조금만 더 더워져도 걸어서 커피 사러 가는 일이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자녀들이 먼저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을 할 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성경공부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아내와 자녀들의 일과가 끝날 때까지 교회에 있다가 함께 집으로 왔다. 아내는 나와 자녀들을 집에 내려 주고 곧장 떠났다. 아이들 저녁은 점심에도 먹었던 카레였다. 너무 지겨워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엄청 맛있게 잘 먹었다. 나의 저녁은 간식으로 먹었던 샌드위치였다. 남은 식빵에 남은 감자샐러드를 넣어서 먹었다. 아이들이 먹을 카레를 다시 한번 데우는 동안, 싱크대에 서서 흡입했다.


아이들이 오늘도 땀을 많이 흘렸다고 해서 한꺼번에 샤워를 해 주려고 했다. 모두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소윤이는 다친 다리에 물이 닿으면 처치를 새로 해야 했다. 물론 나도 할 줄은 알지만 꼼꼼한 아내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소윤이는 샤워를 하지 못했다.


“소윤아. 내일 낮에 시간이 되면 엄마한테 해 달라고 해”


시윤이와 서윤이만 데리고 들어가서 씻겼다. 차례대로 머리를 말리고, 오랜만에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책도 읽어줬다. 물론 끝까지 완독하지는 못했다. 자꾸 헛소리를 하며 조는 바람에. 아이들을 눕히고 나서는 싱크대에 있는 설거지를 처리했다. 주방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참으로 고단한 저녁이었지만, 조금의 불만도 없었다. 아내는 놀러 간 게 아니었다(놀러 갔어도 괜찮았겠지만). 성경공부를 하러 간 거다.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아내라도 저렇게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지’


아내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응원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다(이렇게 말하니까 나는 불신자 같네?).


부부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하면, 난 이렇게 얘기 할 거다.


“통하는 사이”


아내가 성경공부 모임을 마치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핵심 내용은 ‘너무 수고했다. 혹시 뭐 먹을 거 사 갈까? 치킨?’ 이었다. 내가 무슨 치킨 한 마리 던져주면 있던 스트레스도 싹 풀리고,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처럼 덥석 사 달라고 할 줄 알았나 본데, 그렇다면 사람 보는 눈이 참 정확하다.


“너무 좋지”


아내가 사다 준 닭똥집 튀김도 좋았지만, 너무 수고했다고 하면서 안아주는 그 몇 초 덕분에 하루의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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