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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07. 2024

감정과 공감과 논리와 해답

23.06.15(목)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 있었고, 난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아내가 어제 성경공부 모임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렀던 카페에서 먹은 빵이 너무 먹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한테 사 오라는 뉘앙스는 없었지만, 아마도 아내의 마음 깊은 곳에는 ‘혹시 사다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을 거다. 아내가 먹었던 빵은 ‘초당옥수수크럼블치즈케이크’였다. 무슨 맛일지 전혀 상상이 안 가는 이름이었지만 ‘치즈’가 들어간 걸 보니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집으로 가는 길에 그 카페에 들러 빵을 사 가려고 했다. 아내에게 얘기하지 않고 사러 가고 있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그거 사다 줄 수 있어요?”

“안 그래도 가고 있습니다”

“아, 진짜? 알았어요”


20여 분 뒤에 아내에게 비보를 전했다.


“여보. 없네. 다 팔렸대”

“아, 진짜? 아쉽네”


아내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아내가 빵을 먹고 싶어하는 건 호흡처럼 당연한 일이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더 강력하게 원하는 느낌이었다. 어제 너무 맛있었나 보다.


집에 도착했는데 아내의 눈이 많이 부어 있었다. 정말 많이 부어 있었다. 몸이 안 좋은가 싶을 정도로. 몸이 안 좋은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추정할 만한 이유는 몇 개 안 된다. 눈이 그토록 부을 만큼 많이 잤거나, 울었거나. 세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눈이 붓도록 잘 일은 별로 없다. 오늘은 또 무엇 때문에 아내가 그토록 울었을까. 모르지만 알 것 같았다.


요즘은 소윤이도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아내는 ‘사춘기’라는 표현까지 쓰긴 했는데, 난 ‘설마 벌써 그 정도인가’ 싶기는 하다(시윤이는 매일매일 사춘기 오춘기 육춘기인가). 아무튼 확연하게 달라진 태도가 느껴진다. 때로는 그게 너무 반항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다. 소윤이의 성격상 바로 뉘우치고 아내에게 사과도 하고 그러기는 하지만 이제 이성과 논리가 발달한 만큼 이해와 납득이 어려운 시기가 왔나 보다. 아내와 나도 그 변화에 발을 잘 맞춰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내가 가장 걱정이다. 감정과 공감을 얘기하는 소윤이에게 논리와 해답으로 얘기할 때가 많은 게 나도 느껴진다. 아내는 같은 성인이고 ‘부부’니까 제법 대등한 위치에서 다툼이 되기도 하지만, 소윤이는 아직 그렇지가 않다. 나에게는 여전히 딸이고 자녀다. 훈육과 가르침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깊이 박혀 있다.


퇴근하자마자 소윤이가


“아빠. 우리 저녁 먹고 산책 나가면 안 돼여?”


라고 물어봤다.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지난주에 산책을 많이 해서 그런가 이번주는 산책을 향한 의지가 많이 안 생겼다. 생각해 보니 꼭 지난주에 산책을 많이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번주에 내내 저녁에 뭔가 여유가 없기는 했다. 저녁 먹고 나서 특별히 뭔가를 더 하지 않고 일상의 일과를 밟았다.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눕히고.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가려고 나왔는데 밤공기가 너무 상쾌했다. 그냥 동네를 걸었다. 바닷가도 갔다가 공원 쪽으로도 갔다가 찻길도 걷다가. 바닷가나 공원의 깊숙한 곳으로 더 걷고 싶기도 했는데 너무 캄캄하고 사람이 없어 보여서 왠지 무서웠다. 내 덩치를 본 다른 사람들이 훨씬 무섭겠지만.


“아, 라본느 빵 먹고 싶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동네의 빵 가게였다. 아내에게는 믿을 만한 구석이었다고나 할까. 걸어서 갈 만한 가까운 거리에 있는 A급 가게였다. 꽤 늦은 시간까지 하는. 안타깝게도 그쪽 지역에만 있는 빵 가게였고, 이 동네에는 아직 그런 가게가 없다. 맛있는 빵 가게는 많지만 걸어갈 만한 거리가 아니거나 일찍 문을 닫거나.


조만간 아내에게 ‘초당옥수수크럼블치즈케이크’를 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맛인지 나도 맛 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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