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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08. 2024

드디어, 서윤이도

23.06.18(주일)

서윤이가 오랜만에(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아동부 예배에 갔다. 어제 언니,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도 간식을 받고 싶다고 하더니, 간식을 받으려면 아동부 예배에 가야 한다는 언니와 오빠의 말에 아동부 예배에 가겠다고 결심까지 했다. 나와 아내에게 와서도 자기의 결심을 알렸다. 막상 그 순간이 되면 간식을 포기하고 다시 엄마의 손을 잡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늘은 정말로 갔다. 심지어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아주 시원시원하게.


“서윤아. 혹시 예배 드리다 엄마, 아빠한테 오고 싶으면 혼자 계단 올라오면 안 돼. 언니한테 얘기하거나 선생님한테 얘기해. 알았지?”


서윤이 없는 예배라니. 생각보다 허전하고 어색했다. 언제든 중간에 올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예배를 드렸는데, 서윤이는 끝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예배가 끝나고 1층에 갔더니 서윤이는 간식 꾸러미를 아주 소중하게 품은 채 나에게 달려왔다.


“아빠. 저 오늘 간식 받았다여”

“서윤아. 예배 잘 드렸어?”

“네에”


소윤이 얘기를 들어보니 중간에 아주 잠깐 엄마와 아빠에게 가고 싶다고 얘기는 했는데 ‘그럼 간식 못 받는다’는 언니의 꾀임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이게 뭐라고 기특했다. 점심 먹고 오후 예배 찬양팀 연습을 기다리면서 서윤이에게 간식으로 받은 과자 한 개를 줬다.


“서윤아. 오늘 예배 너무 잘 드려서 아빠가 기특해서 주는 거야. 알았지?”

“네”


목장모임도 없고 성경공부 모임도 없어서 교회에서의 일정이 꽤 일찍 끝났다. 너무 일찍 끝나도 어색한 건지 처치홈스쿨 가정을 비롯한 몇몇 가정이 교회 로비와 마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눴다. 자녀들은 자녀들끼리 모여서 놀기 바빴다. 교회에 남은 많은 사람들이, 마치 어느 워크숍에서 테이블 순환을 하는 것처럼 이 사람하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조금 있다가 보면 저 사람하고 대화를 나누고, 또 조금 있다가 보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그랬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신기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마당에서 시간을 꽤 오래 보냈다. 마지막에는 교회 마당에서 키우는 개 두 마리를 자녀들이 목줄을 잡아보면서 놀았다. 흔하지 않은 일인 만큼 자녀들도 무척 신이 났다. 마침 목사님과 사모님, 다른 집사님 부부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가시려던 참이었는데 목사님이 함께 가고 싶은 자녀는 데리고 가시겠다고 했다. 당연히 소윤이와 시윤이도 가고 싶어 했지만 내가 ‘우리는 집으로 간다’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뭔가 얼른 귀가를 하고 싶기도 했고, 아직 이른 시간이었으니 잠시 집에서 쉬다가 밤 산책을 나오거나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할 생각이었다.


남아 있던 다른 가정들도 귀가하는 듯하다가 하나 둘 씩 산책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아마 그게 소윤이의 마음에 더 불을 지핀 듯했다. 소윤이는 나에게 한두 번 더 가면 안 되냐고 물어봤지만 ‘오늘은 집에 가자’고 얘기했다. 결국 소윤이는 차에 타면서 속상함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소윤이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매번 그렇게 집요하게 묻고,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을 때 우는 것도 보기가 싫었다. 그래도 최대한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소윤이에게 오늘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얘기했지만, 결국 소윤이의 그런 모습을 보며 감정이 많이 섞이긴 했다.


교회에서 싸 온 배추된장국으로 저녁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밤 외출을 나갔다.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좋게 선선했다. 조그만 마당이 있는 카페로 가서 야외 자리에 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거기 있는 고양이와 놀았고 아내와 나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빵도 샀는데 물론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닷가 산책도 했다. 단편영화제 폐막식 축하공연도 하고 있어서 구경도 조금 했다. 몇 시간 전의 일(?)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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