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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Jan 10. 2024

할 땐 하고, 놀 땐 놀고

23.06.19(월)

아내가 아침에 전화를 했는데 사랑하는 아들이 또 슬슬 짜증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통화를 끊고 얼마 안 됐을 때, 아내는 나에게 ‘화를 참기가 너무 힘들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아침에 기도도 많이 했는데 벌써부터 힘들다’고 하면서. 난 그저 아내의 토로를 듣고 힘을 내라고 응원하고 격려할 뿐이었다.


오늘은 일을 혼자 했다. 혼자 일 할 때는 보통 점심을 대충 때운다. 집에 가서 밥을 먹을까 싶다가도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때우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아내에게 슬쩍 물어봤다.


“집에 가면 중식 제공 가능한가요?”


아내는 의외의 역제안을 했다. 소윤이가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동네에 있는 중국음식점에 가는 건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 오랜만에 평일 낮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아, 평소에 교회에서 많이 먹기는 하지만 우리 가족끼리 먹은 건 오랜만이었다. 아무래도 시간의 효율이 떨어지기는 해도 가끔씩 이렇게 만나서 밥을 먹는 건 서로에게 잔잔하지만 나름대로 특별한 이벤트가 된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아내에게도, 불청객이 아닌 ‘몰래 찾아온 반가운 손님’으로 대우받을 때,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기분도 좋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카페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날 데려다줬다. 아내는 서윤이를 재우고 카페에 갈 생각이라고 했다. 서윤이를 재우는 건 아내보다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더 좋은 일이었다. 피양육자가 잠깐이나마 한 명 줄어든다는 건 아내에게도 나쁠 것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엄청 극적인 일도 아니다. 피양육자가 한 명일 때 한 명이 줄어드는 것과 두 명일 때 한 명이 줄어드는 것, 그리고 세 명일 때 한 명이 줄어드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에 비해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시윤이가 잠시 자는 건 엄청 좋은 일이다. ‘동생이니까 양보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는 거다. 특히 요즘은 서윤이가 머리도 크고 말도 늘어서 언니와 오빠를 쥐락펴락 한다. 단수가 높은 소윤이는 감기지 않지만 시윤이는 종종 감기기도 한다.


아내는 오후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냈다. 카페에도 있다가 바닷가 산책도 하다가. 난 여전히 카페에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들 산책하는 동선과 겹치는 곳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걸아가면서 내가 앉아 있는 1층 통유리 쪽으로 와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아내는 오후가 끝나갈 무렵, 내가 언제 퇴근하는지를 물었다. 한 시간 정도 더 있다가 퇴근할 생각이라고 답을 했다. 그냥 그쯤에서 마무리하고 일찍 퇴근할까 고민도 했지만 그냥 내 나름대로의 일과를 채우기로 했다. 그래도 아침에도 보고, 점심에도 보고, 퇴근 후에도 만나니 엄청 자주 만나는 느낌이었다.


“아빠. 오늘은 일 한 시간이 별로 없겠네?”


시윤이가 냉철하게 분석을 했다.


“그러게. 괜찮아. 별로 바쁜 일이 없었어”


확인과 감시로 대변되는 직장인의 삶을 오래 살아서 그런가 오늘같은 날은 왠지 모르게 죄를 지은 듯한 기분도 들고, 불꽃이 튀도록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임종을 떠올린다.


‘그래. 내가 죽을 날이 코 앞이면 더 열심히 일하지 않은 걸 후회하겠냐, 아내나 자녀들과 시간을 더 많이 못 보낸 걸 후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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